주최측 텃세? 강자의 설움?

"순 인해전술로 이겨가는군." 지난주 벌어진 제7회 춘란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1라운드를 지켜보던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런 불평이 터져 나왔다. 주최국인 중국이 전체(24명)의 절반 가까운 11명이나 참가, 고작 4명이 초청된 한국을 압도하며 8강 중 7자리를 독점했기 때문. 중국의 티켓 11장 중 3장은 전기(前期) 대회 성적에 따른 것이므로 논외로 쳐야 한다. 그렇더라도 중국 8, 한국 4, 일본 5장의 국가별 할당비율은 과연 합리적인 것일까. 주최국의 프리미엄은 사실 중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 중 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두어 수 아래 실력인 대만이 주최하는 중환배조차 자국출신 기사를 가장 많이 배치한다. 하지만 각국 프로들의 수준이나 국제무대의 성적 변화 등을 반영하지 않은 채 매년 같은 비율을 고수하는 것은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4년마다 열리는 잉씨배에선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올 4월 개막될 6회 대회를 앞두고 "국가 쿼터 3명에 전기 시드 3명 포함해 6명을 보내달라"는 통보가 한국에 도착한 것. 과거 한국에 배정된 국가 쿼터는 4장이었다. 잉씨배는 지금까지 총 5회를 치르는 동안 한국이 4회를 석권했던 대회다. 우리 기사에 대한 배정이 오히려 더 늘어나야 사리에 맞다. 한국의 설명 요구에 대회 관계자는 "주최 측의 소관 사항"이라며 얼버무리더란 후문이다.

일본 주최 대회들은 어떨까. 후지쓰배의 경우 한국이 무려 10연패(連覇) 중인데도 국가 쿼터는 변함없이 한국 5, 중국 5, 일본 7명이다. 도요타덴소배 역시 한국이 3년 간 완전 독점했건만 국가 쿼터는 중국과 같은 5장을 받고 일본에 10장이 배정된다. 그래도 전기 대회 시드자를 포함하면 한국 출전자 총수가 주최국을 초과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게 일본 측의 고민. 그 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러나 실력 요소가 '흥행요인'의 뒤로 밀린다면 일종의 '불공정 거래'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한국이 주최하는 LG배와 삼성화재배는 주기적으로 국가별 쿼터를 조정한다. 한국 선수들의 성적에 따라 배정쿼터에 신축성을 부여하는 것. LG배의 경우 7회부터 9회 대회까지 3년간 한국 기사가 4강을 독점하자 이듬해부터 외국 기사들의 출전 문호를 대폭 넓히는 조치를 취했다. 게다가 이들 한국주최 대회는 각국 기사들이 함께 어울려 본선 티켓을 겨루는 통합예선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국가 쿼터 수의 미비점을 실력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아온 데는 과거 10여 년간의 독주에도 한 원인이 있다.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등을 앞세운 한국은 거의 모든 국제대회를 독점했다. 질(質)에서 월등히 앞선 한국에 양(量)까지 허용해선 대회 존속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경쟁국들의 판단이었고, 그때 만든 기준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이 올라서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제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둑 최강국인 동시에 가장 많은 국제대회를 개최하는 한국의 발언권이 너무 빈약하다는 것. 한국기원 정동환 기전사업팀장은 "외국 관계자들과 만날 때마다 쿼터 배정에 관심을 보인다거나 수시로 협조 공문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에 배정되는 쿼터확대 문제는 국내 프로들의 동기를 유발, 수입과 실력 향상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대책이 필요하다는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