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윤 기자의 시네마 핫!] 통 큰 그녀들… 다~판타지!

"잠깐만요. 나에 대해서 도대체 뭐라도 아시는 게 있나요? (…) 이런 제길, 꺼져버려!"

얼굴만 노련해 보일 뿐 생초보 같은 질문을 퍼붓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해댄 여배우는 인터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터뷰'의 한 장면이다. 할리우드 까칠 여배우 카티아(시에나 밀러)와 거드름쟁이 정치부 기자 피에르(스티브 부세미)의 기싸움이 볼 만하다.

새침한 겉모습과는 달리 와인을 병째 들이키고, 마약까지 흡입하는 여배우 모습에 피에르는 넌더리를 낸다. 이렇게 망가진 듯 하지만 결국 피에르에게 '한 방' 먹이는 카티아의 모습에 묘한 쾌감이 몰려온다. 시에나 밀러의 연기가 어찌나 리얼했던지 미국에선 개봉 당시 '실제 모델이 누구인가' '시에나 자신 아니냐'며 해석이 분분했다.

한국판 시에나 밀러라면 단연 SBS TV 드라마 '온 에어'의 여주인공 오승아(김하늘)다. 드라마 속 오승아는 예의 없지만 당당한 태도가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녀 돌풍의 실체는 '이유 있는 싹수 없음'이기 때문이다. 여자 팬들이 더 극성이다. 주눅들지 않는 모습에 '여자가 봐도 멋지다'는 감탄이 나온다.

오승아가 또 '한 건'한 모양이다. 아침부터 드라마 게시판이 난리다. 잘난 척 하는 기자에게 "정신 지체가 아니라 지적 장애"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같은 건 읽어봤냐"며 다그치는 모습에 팬들이 열광한 것이다. 감독, 작가, 재벌에 이어 기자도 그녀에게 KO패 당한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가. 실제 생활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배우'는 이런 수준이다. 실제 있었던 한 인기 여배우의 이야기. 담당 스타일리스트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광고 촬영장에 나갈 수 없게 됐다고 매니저가 전했다. 그녀의 거친 반응이 매니저 전화기 밖으로까지 흘러나왔다고 한다. "뭐야? 못 온다는 거야? 엄마가 죽었더라도 와야 할 거 아니야!" 연예계 한 스타일리스트는 "'가식의 여왕'을 찾으라면 쉽겠지만 오승아처럼 '똑똑하게 싸가지 없는 배우'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판타지 수준이다"라고 토로한다.

언젠가부터 카티아나 오승아는 그야말로 현실에선 '판타지' 같은 존재가 됐다. 속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기 싸움을 즐기며, 만나는 사람마다 KO 시켰다간 앞길을 보장받기 힘들어 그럴 수도 있겠다. 어느 새 그녀들의 말은 첨삭과 편집을 거쳐 인터넷을 달구기 일쑤고, 각종 'X파일'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착하고 청순하고 귀엽거나 혹은 아예 '4차원'으로 콘셉트를 잡는 게 승산이 있어 보인다. 인터뷰에선 '정답'만을 말해야 만인에게 다가가기 쉬워진다. 그렇게 비슷비슷한 그녀들이 많아지다 보니 현실 속 배우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는 건 점점 어렵게 됐다. 그런 사회에서 카티아나 오승아는 시나리오 작가가 제시하는 '해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