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회 LG배 세계기왕전] 토출룡궁(?出龍宮)

〈제12보〉(177~196)=한 판 바둑을 복기하다 보면 어떤 거역 못할 외부의 힘을 느끼며 전율할 때가 있다. 천하 고수라도 바둑을 지려 들면 패신(敗神)에 홀린 듯 엉뚱한 길로 걸어 들어가는 것. 몇 년 전 조치훈은 "지나서 생각하면 모두가 운명"이란 한마디로 이런 현상을 압축했다. 반상(盤上) 드라마가 계속되는 한 결코 폐기되지 않을 불후의 명언이다.

천신만고 끝에 하중앙에 패를 만든 흑이 팻감으로 향한 곳은 177. 바둑판 위에서 가장 작은 팻감이다. 6분 가까운 장고까지 거쳤다. 평소 섬세함과 집중력의 화신으로 불리는 이세돌이 그런 수를…. 모든 게 이성적으론 설명이 불가능한 장면이었다. 참고도 1, 3으로 패를 계속할 장면. A 이하 D까지 팻감은 흑이 월등히 많다.

물실호기, 백은 178로 끊어 거꾸로 "보따리 내놓으라"고 외친다. 용궁을 탈출한 순간의 토끼만큼 용감한 병사가 있을까. 흑도 하변이 걸려 이제 상변 1선 젖힘 따위의 팻감은 안 통한다. 183의 쓰라린 퇴각이 불가피해진 것. 184부터 190까지 유유히 중앙을 보강한 한상훈, 196으로 공배 이음을 강요하고 나서는데…. (182…△, 189…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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