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후지쓰배 11연패(連覇) 신화 이룰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적어도 무대가 후지쓰배라면 한국 바둑엔 통하지 않을 얘기들이다. 세계 바둑사상 초유의 단일 대회 10연패(連覇)를 질주 중인 한국이 11연패를 목표로 또 한 번 신기록에 도전한다. 12일 시작될 제21회 후지쓰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또 한 번 태극기를 꽂을 수 있을까.

후지쓰배는 1988년 일본이 세계 최초로 만든 국제 프로기전이다. 당시만 해도 막강 전력을 자랑했던 일본은 첫 대회서 한국에 고작 3장의 티켓을 제공했다. 그리고 일본은 초기 5년간을 연패(連覇)했다. 그 무렵 한국 기사들은 두어 번 4강에 오른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6회 때 유창혁과 조훈현이 '형제 결승전'을 펼치면서부터 후지쓰배는 한국의 독무대로 변한다. 그 둘은 이듬해 7회 때도 결승서 만났고, 9회 때는 이창호가 첫 우승을 신고했다.

98년 11회부터는 한국 기사들이 후지쓰배를 완전 석권, 지난해 20회까지 10년을 '싹쓸이'했다. 후지쓰배 20년간 한국 기사끼리 결승전을 펼친 경우만 해도 7회나 된다. 20년간 일본은 총 6번, 중국은 단 한 차례(8회대회) 정상을 밟았다. '후지쓰배는 한국 전용 대회'란 말이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올해도 그 전통을 이을 수 있을까. 한국은 전년도 우승·준우승자인 박영훈과 이창호가 자동 출전하고 국가 쿼터로 5장의 티켓을 배정받았다. 랭킹 순으로 이세돌 목진석 조한승 등 3명에다 국내 선발전을 거친 강동윤 이영구를 포함, 총 7명이 후지쓰호(號)에 오른다. 디펜딩 챔프 박영훈의 2연패(連覇), 세계 4관왕 이세돌의 영토 확장, 이창호의 3년 만의 메이저급 세계제패 여부가 우선 떠오르는 관심사. 특히 박영훈과 이세돌에게 후지쓰배는 첫 세계제패의 감격을 안겨주었던 무대였다.

지난해 종횡무진 활약하고도 아직 무관(無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목진석, 군 입대가 임박한 '비운의 스타' 조한승도 어금니를 사리 물었다. 차세대 주역으로 각광 받으면서도 아직 국제무대서 기대에 못 미쳤던 이영구와 강동윤에게도 놓칠 수 없는 기회다. 강동윤은 선발전서 원성진 최철한을, 이영구는 온소진 백홍석을 차례로 꺾고 티켓을 차지했다.

일본 출전자 수는 한국보다 1명이 많은 8명. 1인자 야마시타(山下敬吾)와 요즘 호조인 다카오(高尾紳路) 등을 주력 멤버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주목받고 있는 기사는 신예 이야마(井山裕太)다. 강동윤과 동갑내기(89년생)인 이야마는 16세 때 첫 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맹위 속에 일본 바둑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기대주. 중국은 구리(古力) 창하오(常昊) 투 톱을 주축으로 모두 5명이 패권 도전에 나선다.

올 들어 '국제 바둑전쟁' 역시 이세돌이 삼성화재배와 LG배를 연거푸 제패한 한국이 일단 기선을 잡은 모습. 그러나 뒤이어 벌어진 농심배서 중국이 사상 처음으로 우승 컵을 가져간 데 이어 춘란배서도 중국이 8강 중 7자리를 독점, 거센 반격에 나서고 있다. 상황이 녹록하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1인당 3시간에 1분 초읽기 10회로 우승상금은 1500만엔(약 1억5000만원). 한국의 단일 대회 11연패의 꿈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이뤄진다면 그 주역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