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명품 보석상들 한국에 몰려오는 까닭은…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티파니 보석전(1837~2007)'을 보러 온 관람객 50여 명이 연방 탄성을 쏟아냈다. 직원 이진우(22)씨가 "다이아몬드 값만 1억원이 넘는다"고 하자 관람객들의 입이 다시 벌어졌다.

이에 앞서 이달 4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10층 문화홀에서 끝난 '반클리프 아펠 뮤지엄 컬렉션-영원의 보석전'에서도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남편과 함께 왔다는 이형선(45)씨는 "하나 사고 싶지만 워낙 비싸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프랑스 보석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이 마련한 전시회에는 모나코 전(前)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착용했던 '다이아몬드 티아라(왕관)' '여의주를 입에 문 용 브로치' 등 200여 점의 보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는 22일부터는 프랑스의 대표 보석 브랜드인 까르띠에가 덕수궁미술관에서 '까르띠에 소장품전'을 연다. 까르띠에 160년 역사상 최대 규모로 1860년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만들어진 보석류, 시계 등 267점이 전시된다.

국내에서 첫 전시회를 연 티파니를 비롯해 반클리프 아펠, 까르띠에 같은 명품 보석업체들이 일제히 달려온 이유가 단순히 '보석의 세계'를 선보이기 위해서일까?

■한국에서의 '보석대전(大戰)' 이유가 있다

반클리프 아펠의 김선화 대리는 "값비싼 보석들을 들여와 전시회를 열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며 "어느 정도 고가 보석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은 곳에선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매출 규모가 월등한 홍콩과 중국을 제치고 한국에서 이런 대규모 전시회를 연 것은 한마디로 한국 명품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도 초고가 보석에 과감히 지갑을 열 만한 시점이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보석 시장의 규모는 약 3조6000억원 이상. 세계 5대 정통 보석 브랜드로 불리는 까르띠에, 불가리, 티파니, 쇼메, 반클리프 아펠 등은 국내에서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티파니는 1999년 매출액이 70억 원에 불과했지만, 매년 10~15%씩 꾸준히 성장, 2006년에 255억원으로 늘었다. 까르띠에 역시 1999년 매출액 294억원에서 2006년 936억원까지 뛰었다. 반클리프 아펠은 2007년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이 130%에 이르는 등 최근 들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반클리프 아펠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신정아씨에게 선물한 반지가 이 브랜드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김선화 대리는 "제품이 워낙 고가여서 직접적인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대중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가격은 100만원대부터 수십억원대까지. 김 대리는 "3가지 군으로 나눠서 관리하는데, 네 잎 클로버 모양의 '알함브라 라인'이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제품들"이라고 했다. '가장 대중적'인 이 라인 제품들은 100만원대~수천만원대에 이른다.

프랑스 보석 브랜드인 쇼메는 2000년 매출액 20억원에서 2007년 120억원으로 500% 증가했다. 1999년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서 출발해 현재 백화점 6곳, 면세점 2곳 등 전체 8개 매장으로 늘었다. 쇼메코리아 홍선영 대리는 "예전에는 주 고객층이 50~60대 중년 여성들이었지만, 최근에는 20~30대도 많아졌다"고 했다.

■보석시장의 성장 분기점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명품 보석 시장이 이렇게 커지는 이유는 뭘까. 오원택 서울산업대 금속공예디자인학과 교수는 "일본의 경우도 소득 2만 달러가 될 때부터 명품 선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라며 "국내 소비자들이 해외여행을 통해 안목이 높아진 것도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단순히 명품 구매욕으로만 봐야 할까. 까르띠에 홍보팀 고민수 씨는 "고가의 보석은 재테크의 수단으로도 쓰인다"며 "최근 고가 보석 시장이 커지면서 보석을 단순히 액세서리가 아니라 투자의 개념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가 보석의 가격은 최소 수천만원부터 수백억원대까지 달한다. 희소성의 가치가 있는데다 초고가의 다이아몬드라도 증여세가 없고, 국세청에 신고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상속의 수단으로 애용된다는 것이다.

국민대 생활문화디자인학과 김승희 교수는 "보석 시장이 커지면서 업체들이 전시회를 통해 브랜드 가치도 높이고 대중성도 확보, 고객층을 넓히려는 전략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외제에 밀려 국내 업체는 '위기'

고가 보석업체들의 고객 관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하다. '귀한 제품'이 들어오면 우선 단골 VIP 고객들을 초청해 한정된 품목을 먼저 접할 수 있는 특권을 주며 소수의 VIP를 위해 다이아몬드나 희귀한 보석들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도 정기적으로 연다.

생일, 결혼기념일 등 각종 경조사를 챙기고 고객의 개인 취향에 맞게 선물을 보내는 것은 기본이다. 좋아하는 브랜드를 미리 파악해 샴페인과 함께 그릇이나 촛대, 공연 티켓 등을 선물한다. 10명 이내의 VIP를 초청, 해외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모셔가기도' 한다.

쇼메의 경우, 전 세계 왕족이나 할리우드 스타 등 특급 VIP들의 보석 디자인을 맡아온 디자이너가 매년 1~2회 내한해 주요 고객들의 보석을 직접 디자인해준다. 쇼메가 특별 관리하는 최상위 VIP는 1000여 명. 홍선영 대리는 "1년에 1억원 이상 구매하는 고객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했다. 지난해 9월에는 매장별로 매출액 상위 고객 10명씩만 선별 초청해 수백 년 된 '앤티크 주얼리'를 파는 행사를 열었다.

티파니코리아 이소연 차장은 "매년 1억원 이상 꾸준히 구매하는 고객들만 수천명"이라며 "예전에는 티파니하면 무조건 다이아몬드, 결혼 예물 등을 떠올렸지만 이제는 아기들 딸랑이 같은 유아용품부터 20대 패션 주얼리, 노년층 대상의 보석까지 고객층이 넓어지고 대중화되고 있다"고 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오원택 서울산업대 교수는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국내 귀금속 소매상들은 10년 이상 답보 상태에 있다"며 "우리 사회가 그만큼 양극화돼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외 명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국내 산업은 더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