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대범한 구상

〈제2보〉(14~32)=백 △에 흑이 22로 받지 않고 ▲로 끊어간 장면. 전자가 '실험 정신'이라면 후자는 '반골 정신'이다. 백을 들고 뚜벅뚜벅 따라가기 좋아하는 한상훈이 이토록 큰판에서 먼저 의욕적 변화를 구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이세돌은 상대의 주문을 좀체 들어주지 않는 타입. 양쪽 기세가 충돌하면서 전혀 색다른 초반 형태가 수놓아진다.

원래 축이 나쁘면 16으로 젖히는 수는 없다. 따라서 참고 1도 1로 굴복해야 하는데, 4 이후 흑 A의 급소 침입이 매우 아프다. 한상훈이 △를 둘 때부터 준비한 구상은 21까지 백 2점을 버리고 22를 차지하는 것. 실리로는 엄청난 손해여서, 그 대범함에 선배 기사들이 깜짝 놀란 표정들이다.

23은 어땠을까. 검토실은 참고 2도 1의 요소를 차지한 뒤 11까지의 유장한 흐름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이게 또 한 번 빗나갔다. 노 타임으로 힘차게 23에 붙이는 이세돌의 손길에서 기세가 느껴진다. 그는 침착한 상대를 격동시켜 빨리 전장(戰場)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다. 백도 24로 안쪽에서 젖히는 것은 예정 코스. 32 다음 흑의 정석 수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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