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촉촉한 시선] 기껏해야 별 다섯 개?

이번 주에 출간된 윤제림 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문학동네 펴냄)를 느릿느릿 읽다가 문득 시선이 멈췄습니다.

'제아무리 잘 된 영화래봤자/ 별 다섯 개가 고작인데,/ 우리들 머리 위엔/ 벌써 수천의 별들이 떴다'(한여름밤의 사랑 노래)

영화 담당 기자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발언 같아 민망하지만, 솔직히 이번 주말에는 시인의 문장을 지지하고 싶어집니다. 밤의 별뿐만 아니라 낮의 꽃망울과 새 이파리마저 이렇게 눈부신 봄이니까요. 갓 태어난 분홍과 연두로 광화문을 물들이는 가로수들이 휘황합니다.

조선일보 영화팀의 '금주의 선택'은 이번 주 쉽니다. 전력투구하고 싶을 만큼 추천 혹은 비판할 만한 작품을 고를 수 없었기 때문이죠. 잘 알려져 있다시피 4월은 극장가 최대의 비수기입니다. 1년 중에 관객이 가장 적은 달이죠. 날씨가 좋으니 극장 나들이를 미루게 되고, 영화사는 좀 더 좋은 시절을 기다려 큰 작품 개봉을 미루게 되니 빚어지는 악순환입니다.

이번 주 개봉작은 모두 8편. '이 한 편의 영화'는 결국 찾지 못했지만, 대신 독특한 빛깔과 의미를 지닌 두 편을 소개합니다. 관객의 취향과 관심에 따라서는 열렬한 지지와 육두문자 섞인 불만이 엇갈릴 수 있는 영화들이죠.

우선 히스 레저(Ledger)의 '캔디'. 석 달 전 스물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 젊은 배우의 마지막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영화에서 그는 구제불능의 마약중독자입니다. 실제 그의 사인이 약물 중독으로 추정됐기 때문에 스크린의 레저와 현실의 레저는 여러 번 겹쳐집니다. 캔디는 영화 속 여주인공의 이름이자, 강력한 마약 헤로인의 속어. 레저는 캔디와 함께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꿈을 꿉니다. 어쩌면 스크린 밖에서도 캐릭터를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 만큼, 마약중독자 레저의 연기는 현실감과 디테일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캔디'가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닐 듯 합니다. 레저의 열혈 지지자를 제외한다면, 이 우울한 드라마의 연출 발걸음은 지극히 관성적이고 굼뜨게 보일 테니까요.

'별별이야기2: 여섯 빛깔 무지개'는 6편을 묶은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국가인권위원회 지원으로 제작된, 재미보다는 의미에 우선 순위를 둔 작품입니다. 동성애, 시각장애, 남성콤플렉스, 여성과 육아 등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나쳤던 편견과 차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도와줍니다. 선동적인 고발보다 환기(喚起)와 반성을 방법론으로 채택했다는 점에서도 작지 않은 호소력을 지녔고요. 시각장애아인 명선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나타난 요정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캐릭터로 묘사한 '세 가지 소원'(안동희·류정우 감독)의 설정과 전개가 가장 흥미롭군요.

낮부터 구름 한 점 없더니, 창문 밖으로 내다보이는 서울 시청 밤하늘이 유난히 검푸릅니다. 목요일(17일) 밤, 도심의 빌딩은 달과 별이 뿜어내는 빛으로 푸르게 젖었습니다. 스크린 안과 밖의 별을 모두 즐기는 주말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