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따라가는 산행] 영암 왕인문화축제 & 월출산

동백, 매화, 그리고 벚꽃…. 봄을 알리는 화신은 남도로부터 온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난분분 휘날리는 벚꽃을 보노라면 봄이 곧 떠나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에 잠기게 된다. 이럴 때엔 미리 남도로 떠나 화신을 맞이해보자. 남도의 아름다운 고장, 영암! 벚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이 고장에선 백제시대 일본에 유학을 전파한 왕인 박사를 추모하는 축제가 열린다. 연분홍 꽃비에 젖어 즐기는 축제. 남도의 명품 월출산과 함께라면 봄날의 행복은 곱절이 되지 않을까.

호남의 소금강’이라는 찬사가 부끄럽지 않은 월출산(809m)은 4월 초순이 되면 연분홍 벚꽃 띠를 100리에 걸쳐 두른다. 돌불꽃 같은 월출산 암봉들과 파랗게 돋아난 보리밭 사이에서 피어난 벚꽃의 춤사위는 장관이다. 그중 가장 벚꽃이 좋은 곳은 영암 읍내에서 구림리의 도갑사와 왕인박사 유적지 앞길을 지나 독천리에 이르는 15km쯤의 구간. 이곳은 20~30년생 벚나무 2만여 그루가 늘어서서 온몸으로 봄을 노래한다.

왕인박사가 나고 자란 구림마을의 성기동
벚꽃길이 시작하는 구림마을은 왕인박사와 도선국사가 태를 묻은 마을로 월출산 기슭에서 가장 역사가 깊다. 구림(鳩林)이란 지명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도선국사가 비둘기의 보호를 받았다는 탄생설화에서 유래한다. 도선국사는 음양이론과 풍수법을 골자로 한 ‘도선비기’를 써 당대에 유행하던 도참설을 정립시키고, 월출산의 대표적인 절집인 도갑사를 창건한 인물이다.

구림의 성기동(聖基洞·성짓골)은 왕인박사가 나고 자란 곳이다. 백제 고이왕 때 학자인 왕인은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유교를 전파했고, 그곳 왕실의 스승이 되어 왕의 정치고문 역할을 했다. 또 당시 동행한 기술자들이 종이와 토기 제작기술을 전수시켜주면서 일본의 아스카문화를 촉발시킨 인물로서 일본에서 더욱 추앙받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왕인은 8살 때부터 서당을 다녔다고 한다. 그 서당은 월대암 아래의 지금 양사재(養士齋) 자리에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산허리를 돌아가는 오솔길을 오르면 시누대 밭 속에 ‘선비 기르는 학교’ 양사재와 왕인이 책을 쌓아두었다는 책굴, 왕인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전해지는 왕인석상이 있다. 이 왕인석상은 왕인 일행이 일본으로 출항하던 항구 상대포를 바라보고 있다.

성기동은 구림리 삼거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800m 거리에 있는데, 1987년 성기동에 사당인 왕인묘(王仁廟)를 세우고 대대적인 정화공사를 통해 성역화하였다. 여기서 계곡을 따라 약 100m 정도 올라가다 보면 ‘성천(聖川)’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다. 성천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조암(槽巖)’ 즉 구유바위라고 새겨진 바위가 길을 막고, 그 아래 말구유를 닮은 자그마한 소에는 맑은 계류가 고여 있다.

구유바위 왼쪽의 아늑한 숲가에 있는 성천(聖泉)은 왕인박사를 키운 샘물이다. 이 샘물은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의 정기뿐만 아니라 왕인박사가 정기를 받은 문필봉의 기운이 한껏 몸으로 전해져올 정도로 시원하다. 머리가 맑아질 정도로 목구멍까지 짜르르하게 만드는 샘물인데, 이 고장에서는 음력 3월3일에 성천 샘물을 마시고 구유바위에서 목욕하면 왕인박사 같은 성인을 낳는다는 전설과 풍습이 전해져오고 있다.

‘왕인의 빛, 문화의 길을 열다!’
매년 벚꽃이 필 무렵이면 이곳 아스카문화의 발신지에서 왕인문화축제가 벌어지는데, 올해엔 4월5일(토)부터 8일(화)까지 나흘간 왕인공원·구림마을·도기문화센터·도갑사·월출산 등에서 개최된다. 열두 번째를 맞는 2008년 왕인문화축제의 주제는 ‘왕인의 빛, 문화의 길을 열다!’, 표어는 ‘월출산 백리 꽃길, 오감만족 역사여행’이다.

‘왕인의 빛’은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학문을 통해 문명을 깨우치고, 고대 일본의 아스카문화를 꽃피운 상생의 정신을 상징한다. ‘문화의 길’은 국가 간에 교류가 쉽지 않던 고대의 환경에서 선진 문물과 장인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가 미래지향적인 문화의 큰 길을 열었던 소통의 정신을 나타낸다.

축제가 펼쳐지는 나흘 동안 날마다 각각 ‘왕인·소통·상생·대동’이라는 테마로 행사가 진행된다. 첫날인 5일(토)은 ‘왕인(王仁)’. 이 날은 왕인을 성대하게 맞이하는 날이다. 오전 10시 왕인박사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나아가 상생교류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를 기원하는 왕인박사 춘향대제를 왕인사당에서 지낸다.

오후 1시부터 열리는 왕인맞이 개막행차는 축제를 상징하는 주제가 새겨진 오색 깃발을 든 깃발꾼들이 앞선다. 이어 2007 영암왕인문화축제 특별프로젝트로 제작된 ‘왕인유산, 천인천자문’ 완책본을 모신 가마 행렬을 선두로 오경박사, 백제문양 깃발단, 신료 행렬 등으로 구성된 왕인행렬단이 ‘왕인의 빛’을 맞이하고 ‘문화의 길’을 여는 왕인 테마퍼레이드다. 공설운동장에서 영암실내체육관까지 이어진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모일 것으로 보이는 6일(일)의 테마는 ‘소통(疏通)’. 이 날은 왕인이 남긴 한·일 교류사의 위대한 족적을 21세기 문화적 트렌드로 이어받아 ‘소통의 정신’을 세상에 널리 공유한다.

참가자들의 건강과 화합을 꾀하고 구림의 역사와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 왕인축제 행사 중 가장 큰 행사로 꼽히는 영암꽃길 건강걷기대회는 이 날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열린다. 코스는 주무대→구림사거리→수박등 삼거리→회사정→주무대 회귀코스다. 또 오후 2시30분부터는 월출산 보름달의 기운을 담아 영암의 명품 쌀과 일본에서 보내온 팥으로 ‘왕인 천자문떡’을 만들어 군민과 방문객이 함께 나누며 왕인의 상생정신을 되새기는 ‘왕인천자문떡’ 나눔잔치가 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다.

7일(월)의 테마는 ‘상생(相生)’으로 청소년들이 이제 한·일을 넘어 아시아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꿈을 펼치는 날이고, 마지막 날인 8일(화)의 테마는 ‘대동(大同)’으로 모든 축제 참가자가 한마음이 되는 대동 영암의 날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의 행사는 평일이라 그런지 주로 영암읍내 학생들이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축제의 자세한 내용을 보면 총 74종 85개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주제 행사는 한·일 상생프로젝트 ‘왕인 천자문떡’ 등 15종 17개 행사, 체험 행사는 왕인 도일 문화체험인 ‘상대포 뗏목타기’ 등 17종 26개 행사, 지역문화 행사는 영암 전통민속 ‘정동(井洞) 정호제’ 등 14종, 공연 행사는 서울시 국악관현악단 공연 등 6종, 투어 행사는 2200년 역사마을 구림스테이 등 5종이 준비되어 있다. 이외에도 영암 우수 농·특산물 홍보·판매관 등에서 펼쳐지는 판매·판촉행사 10종, 기업도시홍보관 등에서 펼쳐지는 부대행사 7종이다.

올해 왕인문화축제는 경사가 겹쳤다. 지난해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되었고, 왕인을 매개로 일본과의 친선교류를 통해 관광객 유치에 힘쓴 결실로 영암군과 일본 히라카타시 사이에 ‘우호도시 제휴’ 의정서를 4월5일 개막일을 맞아 체결하기로 한 것. 영암군은 이를 계기로 왕인문화축제가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지난 해 행사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1000인 릴레이 천인천자문’의 후속 프로젝트인 ‘왕인 상징조형물 천인천자문’과 ‘한·일 상생 프로젝트, 왕인 천자문떡’ 등을 올해의 특별행사로 준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영암의 문화 자원을 활용한 행사도 많다. 유서 깊은 구림마을 일원에서는 2200년 역사마을 구림스테이, 구림마을 전통문화 체험존, 상대포 뗏목타기 등 전통문화 체험을 운영한다. 그리고 올해 신축 개관한 영암도기문화센터에서는 하정웅 컬렉션 도자전, 영암도기 테이블웨어전, 현대도자의 이해-소장품전, 영암도기문화센터 도기체험교실, 영암도기 장작가마 소성 및 출요 등 풍성한 역사 문화 체험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영암군에서는 축제기간 중에 KTX를 이용한 월출산 벚꽃열차와 영암 관광 1일 버스 투어를 운행할 계획이어서 수도권 방문객들의 참여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행정보

숙박 영암읍에 소프트모텔(471-8101~2), 르네상스모텔(471-5225), 도갑사와 가까운 군서면에 월출산장여관(472-0405), 화이트모텔(471-4998~9), 과수원모텔(473-9939) 등이 있다. 이외에도 구암면 구림리 주변에 아래사위민박(061-473-6122), 왕실민박(061-472-0456), 벽오동민박(061-472-0151), 아침민박(061-472-0242), 죽정기와집민박(061-472-0211), 영래민박(061-472-7540), 고향민박(061-472-0155), 대동계사민박(061-472-0174) 등이 있다. 

별미 바다와 접한 영암은 남도 고을답게 반찬도 풍성하다. 갈낙탕은 호남한우갈비와 갯벌에서 잡은 낙지를 함께 넣어 끓인 탕으로 영암 별미 중 최고로 꼽힌다. 영암 읍내에서는 영암군청 맞은편에 있는 중원회관(061-473-6700)이 갈낙탕을 잘 하는 식당으로 소문나 있다. 갈낙탕 14,000원, 낙지연포탕 14,000원, 짱뚱어탕 8,000원.

왕인박사유적지에서 승용차로 10~20분 거리에 있는 학산면 독천리는 세발낙지의 대명사로 꼽히는 마을이다. 한때 세발낙지 최고 산지로 이름을 날리다가 영산강 하구둑이 생기면서 현지에서는 세발낙지를 잡을 수 없지만, 그 요리만큼은 아직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세발낙지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영명식당(061-472-4027), 독천식당(061-472-4222) 등 20여 곳이나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세발낙지 1마리에 6,000원인데, 한 사람이 보통 3~4마리 정도 먹을 수 있다. 낙지구이 한 접시(4인분) 30,000원. 

교통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광산 나들목→13번 국도(해남 방면)→나주→영암 / 서해안고속도로→목포 나들목→2번 국도(강진 방면)→학산면→819번 지방도→영암 <수도권 기준 5시간 소요>

서울→영암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3회(08:50, 15:40, 16:50) 운행. 일반 17,100원, 우등 25,300원, 5시간 소요.

서울→목포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20~30분 간격 수시(05:30~19:00) 운행. 일반 17,600원, 우등 26,200원, 4시간 소요.

목포→영암 공용터미널에서 매일 3회(08:40~14:00) 운행. 3,170원, 1시간 소요.

영암→구림→도갑사 공용정류장에서 매일 2회(09:30, 16:10) 운행. 1,150원, 20분 소요.  

<사진제공=영암군청>

월출산

호남평야 남서쪽 끄트머리에 솟아오른 영암 월출산(809m)은 조물주가 바위로 정성들여 빚은 예술품이다. 온통 바위로만 이루어진 석화성(石火星)이다. 그래서 암봉들은 모두 ‘돌불꽃’처럼 피어오른다. 바위들은 제멋대로가 아니라 각각 무엇인가를 닮았다. 구정봉 아래 여성을 닮은 베틀굴, 그리고 천황봉에서 구정봉에 이르는 능선엔 이와 어울리는 남근바위가 있다.
또 돼지바위·오리바위·말바위·코뿔소바위·올빼미바위 등등 마치 산 전체가 만물상인 듯하다. 매월당 김시습은 ‘남도에 그림 같은 산이 있다더니, 달은 하늘 아닌 돌 사이에서 솟더라’ 하며 월출산의 가장 큰 특징인 달과 돌을 정확하게 짚었다.

월출산 산행 들머리는 천황봉 북동쪽의 천황사, 서쪽의 도갑사, 남쪽의 금릉경포대계곡이 전부다. 이 코스들은 봄철 산불경방기간에도 폐쇄하지 않으니 여느 국립공원이라면 산행하기 어려운 봄·가을철에도 불법 걱정을 덜고 산에 들어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왕인문화축제 기간(4월5~8일)에도 이 코스들은 모두 열어 놓는다. 하지만 피라미드처럼 솟아난 월출산은 해발 1,000m도 안 되지만 수면에서 곧바로 시작하는 것과 같으니 결코 얕잡아볼 수 없다.


봄가을 산불경방기간에도 열려 있는 주능선 코스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등산인들이 선호하는 코스는 천황사를 들머리로 하여 구름다리와 천황봉·구정봉을 거친 후 미왕재에서 도갑사로 하산하는 길이다. 이 코스는 월출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왕인박사 유적지인 성기동이 하산지점인 도갑사 지구에서 3~4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왕인문화축제 기간엔 하산과 동시에 축제 분위기 속으로 바로 빠져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이번 봄에 월출산으로 간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이 코스를 추천한다. 단점은 승용차를 이용했을 경우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불편함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두 대가 팀을 이루는 게 좋다.

가파르고 험난한 천황봉 오르는 길
천황사 입구 주차장엔 ‘월출산’이라 새겨진 큰 비석이 서 있다. 그 너머로 우뚝우뚝 솟은 월출의 수려한 암봉들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주차장에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5분쯤 오르면 천황사 야영장. 소나무숲이라 아늑하고 관리사무소가 근처에 있어 안전하게 야영할 수 있다. 산행 중엔 식수가 없으므로 여기서 담아가야 한다.

숲길로 들어서 호젓한 산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삼거리. 여기서 오른쪽의 다리를 건너면 바람골을 지나는 계곡 코스요, 왼쪽 길을 따라 곧장 가면 구름다리로 이어지는 능선 코스다. 왼쪽 길로 접어들어 5분쯤 가면 천황사가 나온다. 현재 당우를 지은 뒤 마무리 공사중이라 조금 어수선하다.

천황사부터 산길의 경사는 매우 가팔라진다. 이런 경사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정상까지 이어지니 처음에 너무 진을 빼지 않는 게 좋다. 이따금 뒤돌아보면 바위 아래로 영암의 너른 들판이 얼핏얼핏 내려다보인다. 이렇게 50분쯤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이며 정자가 한 동 반긴다. 그 너머는 바로 월출산의 큰 구경거리인 구름다리다.

2006년 새롭게 단장한 월출산 구름다리는 폭풍우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매우 튼튼해 보인다. 이 구름다리는 지상 높이 120m로 국내 구름다리 가운데 가장 높다고 한다. 다리 길이는 52m. 올려다보면 사자봉과 장군봉 일대의 빼어난 암봉들이요, 내려다보면 깊은 바람골이 까마득하다. 장군봉 너머로는 영암의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다.

여기서부터는 조망지점이 따로 필요 없다.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다 고개만 돌리면 월출산의 암봉들이 두 눈에 가득 들어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따금 수직에 가까운 경사도 나타나니 조심하는 게 좋다. 이렇게 15분 정도 오르면 매봉 정상이다. 옆으로는 우람한 사자봉이 위엄을 자랑하고 있다.

산길은 매봉과 사자봉 안부에서 내리막이다. 그동안 오르기만 해 힘이 들었으니 숨을 고르며 발을 디디면 된다. 산길은 사자봉 아래로 빙 돌아 나있다. 이어 경사가 조금 순해진 주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금릉경포대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를 지나쳐 고도를 조금씩 높이다 뒤돌아보면 올라오면서 보았던 사자봉 일대의 암봉이 장관이다. 이어 철계단을 오르면 통천문이라 불리는 바위구멍이 나온다. 통천문을 지나 왼쪽 길로 10분쯤 오르면 드디어 천황봉 정상.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3시간 정도 걸렸다.

사방 조망이 매우 빼어난 천황봉 정상
천황봉은 월출산의 최고봉답게 조망이 일품이다. 동쪽으로는 사자봉과 장군봉 아래로 빨간 구름다리도 보인다. 남쪽으론 월출산에서 계곡의 경치가 가장 좋다는 금릉경포대계곡, 서쪽으로는 바람재에서 구정봉으로 이어지는 암봉의 향연에 배가 부르다. 또 북쪽 역시 덩치는 크지 않아도 아기자기한 바위들이 온갖 자태를 뽐내고 있으니 눈요기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의 등산인들은 정상의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조망을 즐기며 점심이나 간식을 든다.

천황봉부터는 힘든 오르막은 없다. 주능선을 따라 걸으며 조망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천황봉에서 바람재까지는 약 1km의 내리막이다. 역시 앞으로도, 뒤로도 눈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바위투성이다. 가파른 천황봉을 오르느라 눈 돌릴 여유가 없던 등산인들도 이곳에선 신선처럼 여유를 부린다.

“금강산보다 훨씬 좋구먼!”
“저 바위는 마치 고릴라 닮았구려! 아니, 사람 같기도 한데….”

능선 전체에 가득 들어찬 기암들을 구경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보면 문득 높이 10m쯤 되는 남근바위가 길을 막는다. 이 남근바위는 잠시 뒤에 만날 구정봉 아래의 베틀굴(여근바위)과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남근바위를 지나면 바람재. 언제나 바람이 심하게 불어댄다는 고개다. 바람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은 금릉경포대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다. 주변에 경치 좋은 암봉엔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외국 청년들도 숨을 고르고 있다. 아마 이들도 기묘한 조물주의 작품에 적지 않게 감탄했을 것이다.

바람재에서 부드러운 경사를 10~20분쯤 오르다보면 구정봉 직전에서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구정봉 가는 길이요, 왼쪽은 향로봉으로 이어지는데, 두 길은 구정봉을 지나서 다시 만난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오른쪽의 구정봉으로 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상징성과 조망에서 천황봉과 쌍벽을 이루는 봉우리기 때문이다.

구정봉을 향해 100m쯤 가면 구정봉 아래에 뚫린 베틀굴. 이 굴은 깊이 10m쯤 되는데,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 하여 여근바위, 또는 음굴이라고도 한다. 등산인들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굴을 한참 살펴본다. 그러고는 대부분 알듯 모를 듯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끄덕거리며 굴을 나선다.

구정봉 정상 아래의 갈림길에서 북동쪽으로 500m 가면 월출산 대표 문화재인 용암사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을 볼 수 있다. 이 마애불은 바위 면을 약간 파내 직사각형의 방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모셨는데, 규모가 웅장하고 조각 수법이 정교해 마치 바위 안에 살아있는 듯 느껴지는 걸작이다. 하지만 구정봉 갈림길에서 마애여래좌상까지는 왕복 50분 내외가 걸리니 전체 산행시간을 잘 따져봐야 한다.

정상으로 착각할 만큼 조망 좋은 구정봉
구정봉은 바위굴을 통해서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월출산의 최고봉은 천황봉이지만, 아홉 개의 우물이 있었다는 구정봉도 천황봉만큼의 심리적 높이로 다가온다. 동국여지승람엔 구정봉을 월출산의 최고봉이라고 잘못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구정봉을 내려와 향로봉을 우회해 급하지 않은 경사의 능선길을 1km 정도 내려가면 널찍한 억새밭이 펼쳐진 미왕재다. 이곳에도 역시 조망하기 좋은 바위가 여럿 널려 있다. 억새밭에 불뚝 솟은 바위에 앉아 온 길을 되돌아보면 억새길 너머로 구정봉 정상이 살짝 보인다.
미왕재에서 도갑사로 가려면 북서쪽의 도갑계곡 길로 내려서면 된다. 억새밭을 지나 급하지 않은 경사를 800m쯤 내려서면 드문드문 동백나무가 보이기 시작하고, 이내 오른쪽 계곡에 샘이 나타난다. 이 샘물로 목젖을 적시면 피어난 동백꽃은 점점 늘어난다. 4월 초순이 되면 이 계곡에 동백이 만개할 테니 더욱 운치가 있을 것이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도갑계곡의 수량도 점점 많아진다. 맑은 계곡에 손 담그고 땀을 식히다보면 산길은 더욱 부드러워지고 곧 도선·수미비(보물 제1395호)와 부도밭이 반긴다. 이어 계류 소리 들으며 10분쯤 내려가면 용추폭포가 반기고 이내 도갑사다. 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이 절엔 해탈문(국보 제50호)과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등의 볼거리가 있지만 몇 년 전부터 시작한 보수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중장비들 소음으로 매우 어수선하다. 미왕재에서 도갑사까지 내려오는 데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여행정보

산행길잡이 호남평야 지대에 솟아난 월출산은 해발 809m에 불과하지만 수면에서 곧바로 시작하는 것과 같으니 여느 1,000m급 산과 맞먹는다. 따라서 오르막길에서 우습게 보고 대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월출산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인 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구정봉~미왕재~도갑사 종주 코스로서 총 6시간 정도 걸린다. 만약 주능선 종주가 부담이 된다면 월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까지만 다녀오는 주차장~천황사~구름다리~바람골~주차장 회귀코스(2시간30분)를 선택해도 괜찮다. 정상까지 다녀오는 주차장~천황사~구름다리~천황봉~바람골~주차장 원점 회귀 코스는 4시간 소요. 동백꽃이 좋은 월남리통제소~금릉경포대계곡~바람재 코스는 1시간30분 소요. 도갑사~미왕재 코스도 1시간30분 소요. 도갑사는 문화재관람료 2,000원을 받는다. 월출산 국립공원 전화 061-473-5210.

숙박 천황사쪽의 천황탐방지원센터 주변에 산장식당(061-473-4900), 월출산민박집(061-473-8780), 월출산산악인의집(061-473-3778), 바우식당(061-473-3784), 감나무집민박(061-473-3782), 월출산천황사민박(061-471-3313), 대나무민박(061-473-3971), 남도민박(061-473-5353) 등이 있다.

별미 천황사 지구는 월출산 산행의 대표적인 들머리지만 식당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여섯 개의 식당들이 적당히 떨어져서 자리를 잡고 있는데, 산행기점이기 때문인지 대부분 아침 일찍 문을 연다. 월출산음식문화원(061-471-9274)은 매실게장백반(7,000원)과 낙지해장국(7,000원), 월출산산장식당(061-473-4900)은 토종닭(35,000원)과 홍어무침(15,000원)을 차린다. 도갑사 지구엔 모두 10여 곳의 음식점이 있다. 하지만 메뉴나 맛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 호남식당(061-472-0509)은 더덕구이백반(2인분·16,000원)과 촌닭정식(35,000원), 도갑사가는길(061-471-1030)은 약오리정식(35,000원) 등을 차린다.

교통 성기동 왕인박사 유적지→819번 지방도→8km→영암읍사무소→3km→천황사


/ 글·사진 민병준 르포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