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의 우람한 뿌리

한국 미술 거장들의 드로잉을 한자리에 모은 《한국 드로잉 100년 전(展): 1870~1970》이 오는 6월 1일까지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상범(1897~1972), 구본웅(1906~1953), 이인성(1912~1950), 김환기(1913~1974),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 서세옥(79), 이우환(72) 등 미술사에 이름을 새긴 대가 44명의 드로잉 270여 점이 걸린다.

드로잉(drawing)은 종이에 목탄, 연필 등으로 쓱쓱 그린 그림이다. 유화나 조각의 밑그림 혹은 설계도 역할을 한다. 대부분 드로잉은 완성작으로 가기 위한 과정의 습작(習作), 소묘(素描), 데생이라는 점에서 크게 주목 받지 못해왔다.

그렇지만 드로잉은 작가의 머리에 스친 찰나의 영감이자 명작의 씨앗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19세기 후반 불화(佛畵)의 초본부터 한국 추상미술이 뿌리를 뻗어가는 1970년대까지 우람한 '한국 근·현대 미술사'라는 우람한 삼림(森林)을 산책하는 느낌을 준다.

구체적으로 실루엣처럼 간단한 필선으로 유모차와 엄마, 애완견을 그린 박고석의 〈유모차〉를 비롯해 얼핏 만화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이쾌대의 작품, 이상의 〈오감도〉의 한글초고와 건축가 김수근이 〈공간〉 사옥설계를 위해 그린 드로잉 등이 눈길을 끈다. 또 당대 화가들의 유품이 여럿 들어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구본웅이 들고 다니던 낡은 드로잉 가방, 이인성이 쓰던 스케치북 등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관객들은 문득 대가들이 미술사 교과서에서 튀어나와 바로 옆에서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에 잠길 것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02)425-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