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공피고아(攻彼顧我)

〈제5보〉(73~87)=똑같은 361로(路) 바둑판 위에서 펼쳐지건만 돌들이 메워져 가는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귀에서 변을 거쳐 중앙으로 수렴하는 바둑이 가장 흔하지만 이 판처럼 흑백이 한 덩어리가 돼 떼굴떼굴 구르는 바둑도 드물지 않다. 누가 누굴 공격하는지 모를 난타전. 오직 분명한 것은 끝없는 확전(擴戰)의 연속이란 사실뿐이다.

백 ?의 강인한 절단에 77까지는 필연. 78 이하 81까지는 자체론 손해지만 뒷맛을 노리자는 뜻이다. 그냥 참고 1도 1이면 8까지, 이 진행은 흑이 상변을 깔끔히 접수하고 중앙도 대해(大海)로 달아나 백에게 낙이 없다. 84, 85는 똑같은 맥락으로 자기 약점부터 없앤 뒤 마음 놓고 공격하겠다는 뜻. 바둑십결(十訣) 중 공피고아(攻彼顧我)의 전형이다.

86으로 먼저 한 번 찌른 것도 이런 형태에서 꼭 익혀두어야 할 행마법. 참고 2도 1로 단순히 보강해 6까지 되고 보면 백이 양쪽에서 상대 쌍립을 들여다본 꼴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백은 '가'로 흑돌을 바로 끊어갈 수 있을까, 아니면 '나'로 자체 보강하는 것이 옳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