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위의 누아르 영화 '라 디스탄시아'

권투용어 중에 저지먼트 오브 디스턴스(Judgement of distance), 즉 '거리두기'란 개념이 있다.

승리를 위한 공격과 방어의 전략적 판단을 의미하는 '거리두기'는 비단 권투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 전략에도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바깥으로 돌면서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아웃파이터 복서와 저돌적인 공격을 퍼붓는 인파이터 스타일의 부패 경찰이 만나면서 '거리두기' 전술은 단순히 승리가 아닌 생존을 위한 게임으로 변모한다.

복서로 전성기를 누리던 다니엘(미구엘 앙겔 실베스트르)은 살인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출감을 앞두고 그는 부패 경찰 기예르모(호세 코로나도)로부터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사내를 죽이라는 협박을 받는다. 생존 위협에 굴복한 다니엘은 살인을 저지르고 바로 석방되지만, 살인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이 죽인 사내의 미망인(베렌 로페즈) 뒤를 쫓는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고, 다니엘은 그녀를 통해 자신이 거대한 음모에 둘러싸이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음모는 무엇이며, 은폐된 진실을 향한 다니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13년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이냐키 도론소 감독의 '라 디스탄시아'는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음모에 노출된 두 남자의 치열한 두뇌 게임을 그린다. 두뇌 게임이란 다름 아닌 범죄와 폭력의 거대한 악에 둘러싸인 거친 세상과 싸워서 이겨야만 하는 생존게임이다. 역설적으로 이냐키 도론소 감독은 살인을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려는 다니엘의 모습과 조직 내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살인 청탁을 하지만 결국 토사구팽당하는 기예르모의 모습 등을 통해 원죄의 형벌을 감내해야 하는 남성들의 고독한 심리를 잘 표현했다.

'라 디스탄시아'는 조직적인 음모와 여기서 빠져 나오려는 한 남자의 사투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여인 등 전형적인 누아르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르누와르의 상징이 되는 팜브 파탈의 역할은 아쉽기만 하다. 자극적인 로맨스로 영화의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거나 특색 있는 연기, 그 어느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권투를 소재로 한 남성들의 거친 액션과 누아르 장르가 갖는 본연의 밀도감 있는 시나리오 구성, 그리고 2007년 스페인 과달라하라 멕시코영화제 촬영상에 빛나는 영상은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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