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LG배 세계기왕전] 이세돌의 과속(過速)

〈제7보〉(102~120)=주요 대국 중간의 점심식사 자리에 합석하는 것만큼 거북한 자리가 또 있을까. 하지만 이날 두 기사는 소풍 나온 형제처럼 이례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중국리그와 일본소식을 거쳐 똑같은(?) 양복 색깔까지 화제에 올랐다. "난 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우리 형(이상훈 六단)에게 미안해 죽겠어. 하하." 이세돌은 오전 형세가 극히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102부터 오후 대국. 이 수로 참고 1도 1, 3이면? 흑도 귀를 내 주고 4, 8로 좌변을 장악할 것이다. 4로 7에 받아주기만 한다면 백 A로 패를 노릴 수 있는데 그게 안 된다. 106을 생략 못할 때 107로 뛰어선 백의 고전. 108로 '가'면 흑 2점은 잡지만 하변을 새카맣게 싸발리게 된다.

110 때 참고 2도로 정리했으면 흑의 낙승이었다. 잘나가던 흑에게서 111이란 문제수가 등장했다. 검토실에선 "수가 보이면 결행하는 이세돌의 '병(病)'이 도졌다"고들 했다. 119까지 우중앙 백 대마가 호되게 쫓기는가 했는데 120이 놓였고, 순간 이세돌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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