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팬에 희망주려 열심히 뒀어요"

요즘 바둑계 화제의 중심에 있는 기사는 이창호도, 이세돌도 아닌 차민수(57) 四단이다. 제2회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대항전에 '선발 등판', 딸 또래 젊은 기사들을 파죽지세로 헤치며 4연승을 달리고 있기 때문. 세계적 포커 선수로 인기 드라마 '올인'의 실제 모델이었던 그는 이제 다시 바둑계로 돌아온 것일까.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에 쾌승을 거듭하는 비결이라도 있을까. 바둑계 최고의 '팔방미인'으로 통하는 차 四단을 만났다.

―시니어 팀이 여성 팀에 연패하던 작년과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예상했던 일인가?

"처음엔 '밥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2승 정도가 목표였는데 나도 뜻밖이다. 시니어 팀 동료 멤버 11명이 '우리도 좀 두게 이제 내려오라'고 난리다. 주장인 조훈현(56) 九단은 '휴가 다녀 올 테니 그때까지 대회 끝내 놓으라'고 농담하더라(웃음)."

―2000년대 들어 9년간 공식대국 수가 고작 14판뿐이다. 바둑은 오래 손을 놓아도 실력이 줄지 않는 분야라고 해석해도 되나?

"거의 떠나 있다가 이번 대회 한 달쯤 전부터 인터넷 실전으로 감각을 되살렸다. 그러나 그 정도로 실력이 뭘 늘었겠나. 상대들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자멸해 준 결과다. 저쪽에서 곧 '소방수'를 내놓을 테니 내 목숨도 얼마 안 남았다."

―여성 프로들을 만나면 '거저먹는다'던 시절이 있었는데 대국해보니 어떤가.

"요즘은 오히려 여성들이 노장을 만나면 씩 웃는다더라. 부딪쳐보니 과연 강했다. 계속 뛰어난 여성신예들이 진입 중이니 우리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정년퇴직이다 구조조정이다 해서 사회의 50, 60대들이 퇴물취급당하고 있는 현실이 평소 너무 안타까웠다. 올드 팬들에게 희망을 안긴다는 각오로 열심히 두었다."

―무슨 일로 그토록 바쁜가. 명함집도 여럿이던데 몇 개나 되나.

"광운대 경영대학원에서 리조트 산업을 2년째 가르치고 있다. 경원비전이란 눈썹 영양제 제조회사가 주업(主業) 격인데 아직은 적자다. 카지노산업연구소 소장으로 신설업체 컨설팅도 맡고 있다. 여기에 프로기사와 영등포 경원빌딩 명함까지 하면 5장쯤 되나…."

―한때 연간수입이 수십억 원에 이를 만큼 뛰어난 포커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요즘에도 출전하는지. 그에 비하면 바둑 대국료는 푼돈 아닌가.

"지금은 전성기 때 수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래도 매년 방학 때 두 차례 미국에 건너가 출전한다. 바둑은 돈은 안 되지만 자체가 너무 즐겁다. 수입원은 포커이고 직업은 프로기사였던 셈이다. 지금도 수입의 30%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올해 초 춘란배 때는 일본 이마무라(今村俊也) 九단을 꺾었더라. 국제무대에 더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미국바둑협회 이사장을 맡아보면서 재정적으로 지원해 온 지 20년쯤 된다. 그러다 보니 미국 대표로 출전할 기회가 종종 생긴다.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지 33년 됐다."

―프로기사로 세계대회에서 두 차례나 8강에 올랐고, 세계적 포커 플레이어로 활약했으며 예술과 스포츠에도 만능이다. 혹시 지능지수 체크해 본 적 있나.

"낮다. 100이 약간 넘는 정도다(웃음). 지능이란 응용력 계산력 상상력 판단력 추리력 등 여러 부문을 뜻하는데 내 경우 기억력은 아주 형편없다. 바둑 포커 모두 엄청 어려운 학문이지만 상상력을 요구하는 분야이고, 그래서 그나마 약간 두각을 보였던 모양이다."

―이번 대회에서 몇 승까지 할 것 같은가. 앞으로의 포부는?

"5국(14일)이나 6국(15일)이 고비가 될 것 같다. 승단 욕심도 간절해 국내출전 횟수를 좀 늘릴 생각이다. 지금 단위도 초단 때 보급 공로로 받은 것이다. 사업에 성공해 우리 바둑계에 보탬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늘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