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꼬임수

〈제6보〉(79~96)=강동윤은 잔수와 노림이 매우 강하면서도 임기응변에 능한 타입.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반면(盤面)을 운영, 상대가 어떤 초식으로 나와도 익숙하게 대응한다. 한비자(韓非子)에 등장하는 수수방원기(水隨方圓器·물은 그릇 구조에 따라 모양새를 맞춘다)란 표현에나 빗댈 수 있을까. 3년 전 어느 신예기전에선 첫 점을 과감히 천원(天元)에 놓는 등 탐구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백이 △에 젖힌 장면. 이 수는 일종의 꼬임수였다. 참고 1도를 보자. 흑이 무심코 1로 받았다간 백 2때 대책이 없다. 6까지 외곽을 틀어막혀 흑이 망한다. 그렇다고 흑 3으로 4에 잇는 것은 A의 양단수를 당해 파탄이다. 실전 87까지도 백은 선수(先手)로 상당한 수확을 올린 결과. 초반부터 장고를 거듭하던 흑은 85부터 때이른 초읽기에 돌입했다.

90은 언뜻 공배같지만 나름의 노림을 품고 있으며, 실제로도 앞으로 벌어질 대소동의 출발점이 된다. 91은 작아 보여도 선수에 해당하는 수. 참고 2도 7까지의 수단 때문에 백은 92, 94의 손해를 감수했다. 어쨌든 백은 노리고 노리던 96을 감행했고, 바둑은 여기서부터 전혀 뜻밖의 물살에 휩쓸리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