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전 차량이 공항까지 마중 나왔더군요"

"이번에는 칸 영화제 공식 마크가 새겨진 의전 차량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더라고요. (웃으며) 차이라면 그 정도?"

2번째 칸 방문에 대한 소감을 봉준호(39) 감독은 장난 섞은 유머로 시작했다. 사실 칸 영화제는 그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300만 관객으로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세운 봉 감독의 '괴물'은 2006년 칸 감독주간 상영작. 비록 칸 영화제 공식 행사는 아니었지만, 이곳에서의 좋은 평가가 거꾸로 한국에서 폭발적 흥행의 구심점이 됐다는 게 주지의 평가다.

2008년에도 칸은 다시 그를 지지했다. 레오 카락스(Carax·48·퐁네프의 연인들), 미셸 공드리(Gondry· 45·이터널 선샤인)와 함께 찍은 옴니버스 영화 '도쿄!'를 공식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그것도 개막작으로 초청한 것. 장래가 주목되는 젊은 감독의 데뷔작과 역량을 검증 받은 중견 감독의 신작을 주로 상영하는 이 부문에서 '도쿄!'는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다. 15일 드뷔시 극장의 언론 시사회장은 전 세계 기자·평론가로 이미 만원이었다.

그는 "솔직히 조금 신기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봉 감독이 아직 피 끓는 영화청년에 불과하던 80년대에 '나쁜 피'(1986년도) '퐁네프의 연인들'(1991년도)의 레오 카락스는 당대 최고 감독 중의 한 명이었다. 영화광 출신으로 이름난 이 영화감독은 "(영화에 뛰어든) 우리 또래는 왜 '나쁜 피' 보고 나서 인생 망쳤다고 농담하던 세대 아니냐"면서 "나는 취향상 광팬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천재적이고 경이적인 선배 감독과 옴니버스 영화를 찍는다는 게 신기했다"고 고백했다

실제 만나 본 소감은 어땠을까. 서로의 일정이 달라 모두가 얼굴을 마주 한 것은 딱 한 번, 2007년10월 도쿄에서였다고한다. 그는 레오 카락스를 '레오님'이라 표현하면서, "레오님의 포스(영화 '스타워즈'에서 유래한 위력을 뜻하는 유행어)에 눌려, 우리 둘이 술만 먹었다"고 했다. 그의 격의 없는 표현을 빌리면, "거의 정신분열에 가까울 정도로 항상 유쾌한 조증(躁症)의 미셸 공드리에 비해 거의 말이 없던 레오 카락스는 자폐적 성격에 가까웠다"는 것. 덕분에 궁합이 맞았던 봉 감독과 공드리만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켰다고 했다.

일부는 올해 칸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가 없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시하지만, '도쿄!'는 이미 한국영화가 그런 민족주의적 콤플렉스 정도는 벗어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 아닐까. 봉 감독은 "특수효과를 뉴질랜드·호주가 담당했던 '괴물' 때도 그랬지만, 영화는 이미 문화적·산업적으로 뒤섞이고 국가의 경계를 넘은 지 오래"라면서 "이번 '도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호텔 로비로 나서는데, '도쿄!'의 다른 두 감독이 나타났다. 상영될 필름 프린트의 마지막 점검을 위해 함께 하는 자리라고 했다. 두 번째로 함께 모인 세 감독이 반갑게 서로의 어깨를 안았다. 칸의 짙은 어둠 속에서 그들의 국경은 희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