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허허실실(虛虛實實)

〈제9보〉(122~137)=강동윤은 긴 시간 바둑도 잘 두지만 특히 속기(速棋)에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기사로 정평이 있다. 대표적 속기기전인 바둑리그서 지난해 12승으로 다승왕에 오른 데 이어 올해 역시 3승으로 한 판도 지지 않았다. 지난해 이창호를 꺾고 성인대회 첫 우승을 따낸 전자랜드배 역시 제한시간 10분짜리 기전. 이창호를 상대해선 장고(長考)대결을 포함해 총 5승3패로 앞서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122로 늦춘 수는 정수. 123 자리에 그냥 틀어막는 것은 참고 1도 8까지 수가 난다. 그렇다고 상변 백 3점을 버리고 중앙을 취하는 건 역시 손해가 크다는 게 최규병 九단의 결론. 126의 빈삼각으로 받은 것도 정확한 응수였다. 모양이 사납다고 '가'에 두었다간 참고 2도까지 당장 파탄을 맞는다.

127, 129는 흑의 권리. 130까지 일단락이다. 이 시점에서 형세는 어떨까. 미세하긴 하지만 백을 갖고 싶다는 게 중론이었다. 초읽기에 쫓기면서도 강동윤은 131부터 백의 약점 추궁에 나선다. 135는 적시의 응수 타진. 그러고 나서 137로 하변을 정비했다. 안경을 낀 전형적 수재타입의 두 기사 머리가 마치 충돌이라도 할 듯 바둑판에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