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취향을 가졌던 사나이들이 지녔음직한 물건들

수백 년 묵은 노송을 우지끈 베어 넘긴 다음에 옛 목수들은 이렇게 했다. 우선 나뭇결이 살아나게 톱으로 켰다. 3년간 물에 담가 기름기를 빼고, 3년간 그늘에 말려 물기를 뺐다. 그 뒤 뜨뜻하게 불 땐 온돌방에 들여놓고 목수가 그 위에서 1년을 잤다. 7년 걸려 반듯한 판자를 마련한 뒤에도 조촐한 가구 한 점 짜내는데 다시 6개월~1년이 걸렸다. 칠을 하고 경첩을 달고 못을 박는 데도 다 '제 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공들여 만든 가구를 조선 사람들은 대를 물려가면서 썼다. 다음달 5일까지 서울 인사동 고도사(古都舍)에서 열리는《조선 선비가구의 멋 전(展)》에 조선 사람들의 체취가 훅 끼치는 조선 목가구 100여 점이 나온다.

김필환(金弼煥·69) 고도사 대표의 소장품도 있고, 김 대표가 전국의 개인 소장가를 찾아 다니면서 고개 숙여 빌려온 물건도 있다. 가구 한 점 한 점을 세세하게 뜯어보노라면 문득 옛 사람들의 기척이 바로 옆에서 느껴진다.

무쇠 장식을 댄 소나무 책장은 19세기 초반 경상도 지방의 한 종가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둡고 은은한 빛깔과 간결한 구조에 부유하고 교양 있는 사대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주칠을 한 구절판도 독특하다. 상 위에 올려놓고 쓰는 일반 구절판과 달리, 이 작품은 소반처럼 12㎝ 높이의 다리 네 개가 달려있다. 색깔은 화사한 주홍색. 납작한 뚜껑 대신, 서양 케이크 덮개처럼 생긴 키 큰 뚜껑을 덮었다. 왕가 혹은 그에 버금가는 세도가에서 세련되고 까다로운 여주인이 특별 주문해서 사용하던 물건으로 추정된다.

전시회 제목은 《조선 선비가구의 멋 전(展)》이지만, 가구 뿐 아니라 선비들이 쓰던 소품과 중인들의 생활용품도 나왔다. 어피(魚皮)를 씌운 '각게수리'(남자들이 쓰던 일본식 궤짝)가 재미있다. 여닫이 문을 열면 조선식으로 텅 빈 공간이 나오는 대신 각각 크기가 다른 서랍 여덟 개가 나온다. 화려한 외양과 정교한 자물쇠로 미루어, 서생(書生)이 썼다기 보다는 돈을 다루는 상인들이 썼음직한 물건이다.

물론 선비라고 해서 검박하게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뿔 장식이 달린 쇄자(刷子·망건과 갓의 먼지를 터는 솔), 자개 벼루함과 서류함에 세련미가 넘쳐 흐른다. 스스로 '당대 최고의 취향'을 지녔다고 자부했던 사나이들이 지녔음직한 물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