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칸 한국 영화의 밤 행사장을 찾은 아르헨티나 파블로 트라페라(Trapera) 감독은 "남미 영화가 재발견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상상력이 바닥난 세계 영화계의 새로운 수원지"라고 했다. 단순히 호언장담의 허세만은 아니다. 그만큼 올해의 칸은 라틴아메리카의 깃발이 오랜만에 힘차게 나부꼈다.
경쟁 부문 22편 중 남미 영화는 모두 4편. 파인 컷의 서영주 대표가 공동 프로듀서를 맡아 우리에게도 알려진 트라페라의 '레오네라'(아르헨티나)는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작으로 오르내리고 있고, 같은 아르헨티나의 여성 감독 루크레치아 마르텔의 '어리석은 여인' 역시 남미 특유의 마술적 상상력으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또 '중앙역'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로 이름난 브라질의 중견 감독 월터 살레스는 '리냐 드 파스(Linha de Passe)'를 들고 다시 칸에 복귀했고, 올해 칸 개막작의 영광을 누렸던 브라질 페르난도 메이렐리스의 '눈먼 자들의 도시' 역시 남미의 생산물. 여기에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 영웅 체 게바라의 일대기를 그린 '체(Che)'까지 더하면 모두 5편으로 늘어난다.
월터 살레스가 '중앙역'(1998)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거머쥔 지 올해로 10년. 마침 지난 2월에는 브라질 호세 파딜라 감독의 '엘리트 스쿼드(Elite Squad)'가 다시 황금곰상을 받았다. 국제영화제 수상의 역사로 보자면 10년 만의 재래(在來)인 셈이다. 부산영화제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에서 풍부한 사회·정치적 시사를 던지고 있다는 점은 남미 영화만이 지닌 매력"이라면서 "지난해 루마니아 등 동유럽 영화를 재발견했던 칸이 올해는 새로운 영화운동의 주역으로 남미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