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철에서 영혼을 발견해내는 상상력 노동자"

그녀는 강철을 구부려서 리본을 만들었다. 부드럽고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 양 날개 사이에 탱탱하게 매듭을 지은 부분이 있고, 제비 꼬리처럼 날렵하게 갈라진 리본 자락이 매듭 아래 두 갈래로 흘러내린다. 이 강철 리본은 '의자' 형상을 취하고 있다. 탱탱하게 매듭 지은 부분에 인간이 엉덩이를 내려놓고 앉으면 된다.

기발한 디자인의 강철 가구를 잇달아 발표해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허문 프랑스 작가 마리아 퍼게이(Pergay·71)가 한국에 왔다. 그녀는 다음달 20일까지 서울 청담동 서미앤투스 갤러리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열고, 대표작과 신작 등 32점을 선보인다.

퍼게이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러시아인이다. 아버지는 열혈 혁명가였고 스탈린의 정보요원이었다. 아버지가 스탈린에게 숙청당해 우즈베키스탄의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다음,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프랑스로 이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퍼게이는 프랑스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뒤 러시아 출신 프랑스 조각가 오십 자킨(Zadkine·1890~1967) 밑에서 조각을 배웠고, 1968년에 강철 가구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퍼게이는 종달새가 지저귀는 듯한 프랑스식 영어를 썼다. "내가 젊었을 땐 조각이건, 가구건 아무도 강철로 뭔가를 만들 생각을 안 했지요. 나는 '강철'이라는 멋진 소재를 집안에 들여오기 위해 '가구'라는 핑계를 댔어요."

퍼게이는 산업화 시대의 상징인 강철을 소재로 미래적인 가구를 만든다. 가령 강철 틀에 은색 가죽 쿠션을 얹은 퍼게이의 소파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쩐지 우주복이라도 입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가구에 흐르는 선(線)은 바로크 골동품처럼 우아하고 유연하다.

그녀는 "내 작품의 뿌리는 그리스·로마에서 뻗어 나온 유럽 미술"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댕, 사우디 왕가, 팔레비 전 이란 국왕 부부 등 세계 각국의 갑부들이 그녀의 작품을 사 모았다.

그녀는 한 외신 인터뷰에서 "굴뚝에는 영혼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묻자 "사실 굴뚝뿐 아니라 모든 가구, 모든 예술작품에 '영혼'이 있다"고 했다.

"심드렁하게 미술 전시장을 돌던 관객이 '아!' 하고 눈동자를 반짝이는 순간이 있어요. 눈 앞에 놓인 예술작품이 자기 안의 무엇인가를 깨운 거지요. '관객을 깨우는 무엇인가'가 바로 작품의 영혼이에요."

"당신은 예술가인가, 디자이너인가" 묻자 퍼게이는 "둘 다 아닌데요" 했다. "'예술가' 같은 거창한 단어는 미켈란젤로, 첼리니 같은 대가들에게나 어울리지요. 난 그저 머릿속에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재빨리 종이 위에 옮긴 다음, 쇳덩이 다루는 사람에게 달려가서 '멋지지? 한번 만들어보고 싶지?' 하고 꼬드길 뿐이에요.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지 않으니까 디자이너라고 하기 어렵고, 직접 쇠를 다루지 않으니 장인도 아니지요. 굳이 말하자면 '상상력 노동자'(worker of imagination)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