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윤 예술혼, 제가 달래줘야죠"

광주광역시 무등산 자락 지산동 주택가엔 지금도 누런 볏짚을 인 초가(草家) 한 채가 있다. 호남화단의 거장 세 부자(父子), 오지호(1905~1982)와 장남 오승우(78), 차남 오승윤(1939~2006)을 배출한 집이다. 지은 지 150년 됐다는 이 초가 뒤뜰엔 아름드리 사철나무 아래 장독 서른 개, 김칫독 여섯 개 그리고 누런 개 한 마리가 볕을 쬐고 있다. 한국 근현대예술사를 빛낸 거장들의 자취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는 가운데 이 호남화단의 산실은 여전히 후손이 살면서 보존되고 있다.

현재 이 집을 지키는 사람은 고 오승윤 화백의 부인인 이상실(61)씨다. 이 집 벽에 걸린 달력은 오승윤 화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06년 1월'에 멈춰 있다. 그러나 세간과 화구는 오씨 부자가 어제도 만진 듯 윤이 반질반질 나고 있었다.

"저는 목포에서 과수원집 7남매의 막내딸로 자랐어요. 젊었을 때도 어렴풋이나마 내 마음 속에 '인간이 해야 할 궁극적인 것은 결국 예술이다' 하는 생각이 있었지요. 그래서 이 댁에 시집왔는지 몰라요."

시아버지 오지호 화백은 온종일 그림을 그리다 해질녘이 되면 어디선가 귀한 코냑을 내왔다. 넘치게 철철 따라 온 식구에게 한 잔씩 돌렸다. "당신도 한 잔, 일 하는 아이도 한 잔, 며느리도 한 잔, 아들도 한 잔…. 공평하고 흔쾌했지요. 끼니 때마다 텃밭에서 싱싱한 야채를 따서 새로 반찬을 만들어 올리고, 손님을 그렇게 많이 치르면서도 나는 고단한 줄을 몰랐어요."

남편 오승윤 화백은 밤마다 앉은뱅이 책상 옆에 앉은뱅이 이젤을 놓고 앉아 목탄으로 쓱쓱 스케치를 했다. 선이 어긋나면 깨끗하게 빤 런닝셔츠 천으로 캔버스를 '삭삭' 닦았다. 이씨는 "그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았다"고 했다.

서른여섯 해를 함께 산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이씨는 "절에 가서 천도재를 지내는 대신, 내가 이 집과 이 집의 예술을 굳건히 지키는 것으로 남편의 혼을 달랜다는 심정으로 살았다"고 했다. 다음달 29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고 오승윤 화백의 유작전에 이씨의 정성이 녹아있다. 유족들이 간직해온 오승윤 화백의 작품을 한데 모았을 뿐 아니라, 부인이 직접 개인 소장자들을 수소문해 남편의 초기작부터 말년의 대작까지 유화와 드로잉 등 70점을 모았다. (062)510-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