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으로 나뉜 밥 딜런… 어떤 게 진짜 얼굴?

밥 딜런에 관한 구구절절한 설명은 조금 쓸데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그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그에 관한 모든 정보는 정육점에 내걸린 고깃덩어리처럼 철저하게 발가벗겨져 있다. 60년대 미국 젊은이들 가슴에 저항의 씨앗을 심어준 포크 록 가수의 모습부터 끊임없이 어딘가로 숨고 싶어했던 은둔자의 모습까지. '저항하는 음유 시인' 밥 딜런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가십과 스캔들의 이름으로 부지런히 전 세계에 송출되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전설이 되어버린 영웅은 세상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말하는 밥 딜런을 거부했고, 오직 맨 얼굴로 사람들 앞에 서고 싶어했던 것 같다.

29일 개봉한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는 너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누구도 충분히 알지 못했던 한 뮤지션의 내면을 6개의 분열된 자아를 내세워 다소 산만하게 그려나간다. 노래하는 시인이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중 스타였으며, 변절자이자 은둔자였던 밥 딜런은 6개의 분열증적인 자아를 만나 새로운 옷을 걸쳐 입는다. 밥 딜런이 평생 들었을 법한 온갖 찬사와 비난, 일일이 대꾸하기 어려웠던 변명들이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체할 만큼 자주 튀어 나온다.

은둔자 밥 딜런이 이처럼 낱낱이 발가벗겨지는 자신의 영화 제작에 흔쾌히 동의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제작에 들어가기 전 밥 딜런은 토드 헤인즈 감독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고 한다. "'천재성'이나 '시대의 양심'같은 수사를 사용하지 말 것." 자신에 관해 오직 진실만을 말해줄 것을 원했던 밥 딜런의 바람은, 토드 헤인즈 감독의 솜씨 좋은 연출력을 만나 제대로 실현되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이 영화에서 밥 딜런에 관해 어떤 환상도 심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 관한 모든 환상을 해체한다.

밥 딜런 해체 작업에 동참한 배우들은, 그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성격파 배우 크리스천 베일과 스타성과 연기력을 고루 갖춘 리처드 기어 등이 밥 딜런의 분열된 자아를 뚝심 있게 그려낸다. 그중 변절자 주디 퀸을 연기한 케이트 블랜쳇의 변신은 다소 놀랍다(여자를 밥 딜런 역으로 내세운 감독의 선택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그녀는 밥 딜런의 깡마른 체구와 노래할 때 보이는 미세한 몸짓, 퉁명스럽게 갈라지는 목소리 하나까지 그럴듯하게 해석해낸다.

연출을 맡은 토드 헤인즈 감독은 '벨벳 골드마인'에서 이미 글램록 스타의 삶을 초현실적인 판타지로 그려낸 바 있는 인물. '아임 낫 데어'는 "눈부시게 초현실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벨벳 골드마인'보다 초현실적인 수위가 한 수 위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끝나도 질문은 계속된다. "밥 딜런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밥 딜런에 관한 모든 것들이 괄호 안에 갇힌다.

◆줄거리

밥 딜런을 연상시키는 6명의 인물. 기차에 무임승차해 세상과 음악을 배워나갔던 우디(마커스 칼 프랭클린), 세상에 대해 뭔가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시인 랭보(밴 위쇼), 포크 음악계의 스타로 군림하는 가수 잭(크리스천 베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중스타 로비(히스 레저), 포크를 포기하고 록을 시도한 덕분에 변절자라는 지탄을 받는 주드 퀸(케이트 블랜쳇), 세상의 관심이 버거워 끊임없이 잠적을 시도하는 은퇴한 총잡이 빌리(리처드 기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각기 다른 상황, 다른 고민에 놓여 있지만, 묘하게 밥 딜런의 얼굴과 하나로 겹친다.



◆전문가 별점

―밥 딜런의 신화를 해체하는 동시에 더욱 보편성을 제시하는 스타의 이미지에 관한 걸작

★★★★ 이상용·영화평론가

―밥 딜런에 관해 아무 것도 알려주는 것이 없는 이상한 전기 영화. 그러나 매혹적이다.

★★★★ 황희연·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