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풍경화엔 불안과 슬픔이 요동쳐"

화가 오치균(52)씨가 지난 29일 뉴욕 맨해튼 첼시미술관에서 첫 해외 개인전을 개막했다.

뉴욕 미술의 중심인 첼시에서 7월12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에는 90년대 중반 작품부터 근작까지 50여점이 걸렸다. 개막식엔 현지 평론가와 큐레이터, 국내외 컬렉터와 취재진 등 200여명이 몰렸다.

한 미국인 평론가가 "당신 그림엔 우리 시대 특유의 도시적 불안이 담겨있다"는 취지의 칭찬을 건넸다. 화가는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고, 내 그림엔 '나'라는 개인이 들어있을 뿐"이라고 자신만만하게 받았다.

미국의 권위 있는 미술잡지 〈아트인아메리카〉 편집장 리처드 바인(Vine)이 이번 전시 도록의 서문을 썼다. 바인은 "요즘 뉴욕에선 풍경화 그리는 작가가 거의 없다"며 "왜 아시아 작가가, 왜 150년 전에 끝난 서양 조류(인상파)에 매달릴까 의아했다"고 말했다. "뉴욕에선 모두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법으로 '최신 실험'을 거듭합니다. 풍경화 따위는 옛날에 끝났다고 얕보고요. 그런데 (오씨의 그림에) 뭔가 있어요. 불안과 슬픔이 요동치고, 힘이 있습니다."

저만치에서 오씨가 팬들에게 에워싸인 채 "인생은 슬픈 것…"이라면서도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을 바라본 바인은 "작가가 수줍고 내성적일 줄 알았는데. 저런 부조화가 재미있어요" 라고 촌평을 던졌다.

오치균씨는 충남 대덕(현 대전광역시)의 가난한 농가에서 10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고학으로 서울대 미대와 브루클린 미대를 졸업했다. 그는 우울한 분위기가 어둑어둑하게 내려앉은 맨해튼, 새파란 하늘 아래 노란 사막이 아물거리는 산타페, 푸른 냉기가 감도는 강원도 사북의 누추한 거리를 그린다. 두껍고 빠르고 거칠고 어둡게, 붓 대신 손가락으로 캔버스에 물감을 찍어 바르고 눌러 뭉갠다.

오만과 자조, 몰입과 공허, 냉소와 낙천이 혼재하는 작품세계가 특징인 그는 뉴욕 유학 시절엔 세탁소 다림질 아르바이트로 버텼다. 무명 화가 시절 하루에 담배를 세 갑씩 피웠다. 제대로 못 먹어 생니가 빠진 적도 있다. 하지만 40대 들어 곤경에서 차차 벗어나자 그는 담배를 끊고, 헬스를 시작하고, 문신을 하고, 좋은 옷을 입기 시작했다. 개막식 날 앞 단추 세 개를 푼 셔츠 깃 사이로 힘차게 부푼 가슴 근육과 어른 손바닥만한 나비 문신이 보였다.

그는 "내 인생엔 그림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예술혼에 불탄다'는 식으로 잘난 척 하는 건 싫습니다. 덧없고 우습잖아요. 그렇다고 불멸의 명성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죽으면 끝입니다. 비누방울처럼 어느 순간 툭 터져 버리면 그뿐이죠. 그래도 살아 생전에 할 일은 그림밖에 없습니다.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이고, 안 그리고 놀면 또 뭐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