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자연을 일깨우는 푸르른 감각

《사유의 경치》라는 제목으로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아홉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임동식(63)씨는 작업 이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중견 작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요즘 촉망 받는 신세대 젊은 작가들보다 '젊다'. 1967년 첫 개인전을 하고 현재 환갑을 넘겼음에도 대중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 원숙한 화가를 젊은 작가처럼 보이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은 그의 그림들이 낯설면서도 생기에 넘친다는 데 있다.

그의 회화는 일상의 풍경에 올망졸망한 상상력을 가미해 변형하거나, 소소한 사물을 사진보다 극사실적으로 재현하거나, 팝아트의 기호를 복습하는 식의 최근 유행하는 그림 경향과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이다.

가령 그 세계는 임동식이 발가벗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퍼포먼스를 펼친 경험을 그린 〈이끼를 든 사람〉에서 보듯 야생을 지향한다. 또는 택시 운전을 하는 친구가 현대미술의 어려운 그림 말고 눈앞의 '멋진' 풍경을 그리라고 해서 시작한 〈친구가 권유한 풍경〉 시리즈에서처럼 소시민의 미적 취향에 닿아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기 소나무와 마주한 생각〉에서 읽을 수 있듯 자연에서 비롯된 작가의 성찰이 그림으로 중개되는 세계이다.

그래서 이를테면 현재 젊은 작가들이 문화 유행 코드의 상투적 그림을 양산하면서 조로(早老)한다면, 임동식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충남 공주의 자연과 살을 나누고 타인과 말을 섞으며 체득한 경험과 사변을 그리면서 푸르러진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푸름이 비유컨대 우리 감상자에게 짙푸른 녹음의 청량감을 준다. 그림 대부분의 소재가 대자연으로부터 왔기 때문은 아니다. 일견 지난 시대 소박한 구상회화처럼 보이는 그 그림들에서 이제는 우리가 너무나 접하기 힘든 꾸밈없는 감각들, 자유로운 경험들과 조우하기 때문이다.

화폭 위에서 그야말로 잡초처럼 무성하게 번식한 물감 선(線)들은 임동식이 숲 속을 기어 다니면서 느꼈을 촉감을 찌르듯 우리에게 전달한다. 또 그가 붓을 미끄러뜨리며 즐겼을 손끝의 경쾌한 리듬을 감촉하게 한다. 작가의 시선과 생각을 고스란히 비춰주는 형상들, 예컨대 아이처럼 감나무 잎사귀를 귀에 대고 토끼 행세를 하거나 자신의 수염을 어린 소나무 가지에 묶어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그림 속 이미지는 또 어떤가? 그것들은 오늘 세련된 문화 감상자가 잃어버렸거나 애초 가져 본 적 없는 자연을 향한 모방적 경험을 보여주고, 새삼 '그림 그리기'와 '그림 보기'가 단순한 행위 속에서 생생한 삶의 계기를 얻는 일임을 일깨운다. 전시는 10일까지. (02)730-7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