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영화팀의 금주의 선택] 캐리에게 결혼은 과연 행복일까

영화는 주인공 캐리가 미스터 '빅'과의 결혼을 위해 38개의 상자에 자신의 20여년 뉴욕 싱글 생활을 포장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물론 상자 안에 담긴 것은 강도를 만난 캐리가 "이 구두만은 안 돼요!"라고 부르짖었던 마놀로 블라닉을 비롯해 샤넬, 베르사체, 디오르 신상품이다. 명품 얘긴 뻔하니까 여기까지! 그래도 딱 한마디만 하자면, 캐리가 펼치는 웨딩드레스의 향연은 유부녀라도 한 번 더 결혼하고 싶게 만든다. 왜 아니겠나. '베라 왕'이라는 제목의 시라도 한 편 지어 바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드레스들인걸.

그러니까 캐리가 '빅'과의 결혼에 골인해 행복해질 수 있었는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줄거리다.(알다시피 '빅'은 '러브레터'조차 비서에게 '팩스'로 보내게 하는 돈 많고 못된 남자다.) 영화는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는데, 여기엔 주인공 4명의 삶에 대한 방식이 담겨 있다. 샬롯은 임신에 성공할 수 있는가? 미란다는 스티브와 화해할 수 있는가? 사만다는 자유분방했던 예전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가?

솔직히 질문을 풀어가는 방식이 새롭다고 말할 순 없다. 오히려 '사랑만큼 유행을 타지 않는 건 없다'라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다소 계몽적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파격적인 디자이너인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드레스를 펼쳐놓았다가, 난데없이 얌전한 '빈티지 드레스'를 얹어놓는 건 사실 '동화'에서 자주 써먹는 수법 아닌가.(여러분~ 물질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에요!)

하지만 실망하지 마시길. 캐리의 내레이션은 여전히 낭랑하고, 사만다의 관음증적 시선과 독설은 훨씬 더 대담해졌다. 애인에게 실연당한 동병상련의 비서에게 "20대엔 즐기고, 30대엔 현명해지고, 40대엔 술이나 사고!"라고 얘기하는 캐리 브로드쇼식 통찰력도 여전하다. 그러니 우리들은 또 바쁘게 그녀의 잠언들을 블로그나 싸이월드에 옮겨 적으며 퍼 나르겠지. 여전히 실연 중인 캐리에게 공감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이 영화엔 귀엽게 생긴 꼬마가 둘이나 나온다.

사실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친구들은 삼삼오오 이런 말을 했었다. "섹스 앤 더 시티 보러 갈 땐 좀 차려 입고 가야 할 것 같지 않아?" "어쩐지 집에서 제일 예쁜 구두를 신고 가야 할 것 같아."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근데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한 건 이 영화가 '데이트용 무비'가 아니라는 걸 여자들이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그녀들은 이 영화가 애인이 아닌 오랜 여자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가서 봐야 할 영화라는 점에 공감했다. 그것이 10년 묵은 '섹스 앤 더 시티'가 가지는 진짜 힘이다. 그래서 우린 '빅'이 '캐리'의 입술에 키스하는 장면보다, 택시도 잡히지 않는 12월 31일, 지하철을 갈아타며 외로운 미란다를 향해 달려가던 캐리의 모습에 더 감동했던 건 아닐까.

■전문가 별점

남성관람금지! 욕망하는 여자들의 속물근성은 여자끼리만 공유해야 할 수다 메뉴!

(★★★ 황희연·영화칼럼니스트)

21세기 도시 여성의 트렌드를 만든 드라마의 무난한 압축판이자 개론서.

(★★★ 이상용·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