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을수록 내 그림이 아버지 작품 닮아가요"

그가 화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고암은 몹시 흐뭇해했다. 융세씨는 파리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와 에콜 데 보자르에 다녔다. 장 뤽 고다르와 루이 말의 영화에 심취하고, 연극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동시에 아버지가 세운 동양미술학교에서 수묵화를 배우고, 조각과 목판화를 연구했다.

고암은 프랑스에서 후반생을 보냈지만 불어를 못했다. 고암의 아들이자 제자인 융세씨는 고암과 한국어로 대화했다. 그는 "아버지가 거장이었기 때문에, 그 그늘에서 벗어나 내 길을 찾는 것이 퍽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한지를 이용해서 화폭 위에 우둘투둘한 마티에르를 낸다. 먹과 과슈(불투명 수채물감)를 동시에 쓴다. 동양과 서양을 한 화폭 위에서 융합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조국이면서도 이방인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있었는데, 세월이 가면서 원도 한도 엷어졌다"며 "충남 예산의 산과 들, 요컨대 한국의 자연이 평생 내 마음속에 살아있었고, 작품 세계의 밑바탕이 됐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인 아내와 남매를 뒀다. 딸(22)은 무대미술, 아들(20)은 수학을 전공 중이다. 그는 1997년 첫 한국 개인전을 열었다. "그 당시 꼭 30년 만에 다시 보는 한국은 동백림 사건 때와 너무 달라져 있어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세 번째 개인전이다.

"한때는 '나는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나이 먹을수록 내 그림이 아버지 그림에 가까워지고, 내 마음에 동양사상이 가깝게 와 닿으니 신기한 일이지요." 전시는 24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