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메르디앙 '사이판 대첩' 2위 도약

남태평양 에메랄드빛 바다와 야자수를 배경으로 치르는 단체전은 얼마나 즐거울까. 하지만 '선수'들은 들뜬 표정 속에 긴장감도 역력했다.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으리라. 승패에 따라 순위가 춤을 추는 시기다. 홈팀 월드메르디앙이 신성건설을 지난 19일 사이판 월드 리조트로 불러들였다. 한국바둑리그 사상 두 번째 해외투어다.

2년 전 같은 곳에서 첫 해외투어를 열었던 월드 팀은 또 한 번 '통 큰'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소속 선수들의 부모님을 원정에 동참시킨 것이다. 오전 10시 대국이 시작되자 월드 장수영, 신성건설 양재호 감독이 거푸 냉수를 들이켰다. 섭씨 30도 안팎 무더위 탓만은 아닌 듯했다. 월드 팀의 '엄마 아빠'들도 아침부터 검토석을 뺑 둘러쌌다.

신성건설 이정우가 초반 불리를 딛고 월드 박정환을 앞서기 시작했으나 중반 치명적 착각이 터졌다. 국내 최연소 프로인 박정환(15)의 흑 10집 반 역전승. 아빠의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거의 동시에 올해 개인전적 3연패를 기록 중이던 월드 박승화가 국내랭킹 4위인 신성 목진석을 백 반 집 차로 꺾었다. 이 바둑이 결과적으로 결정타가 됐다. 박승화는 점심시간 이렇게 말했다. "해설자 김성룡 사범님이 전날 인터뷰 때 내가 이길 확률이 몇 프로나 된다고 생각하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오기가 나서 무조건 이긴다고 했지요."

오전 두 판을 모두 내준 신성이 급해졌다. 식사시간 양재호 감독이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분패한 두 선수를 다독이랴, 오후 등판할 선수들을 격려하랴 필사적이었다. 장수영 월드 감독은 "아직은 모른다"면서도 표정이 한결 느긋해졌다. 배준희(21)는 고집을 꺾지 않고 기어이 긴 바지 차림으로 오후 대국에 출전했다. "저 녀석은 언제나 저렇게 예절을 따져요. 품위도 좋지만 이런 휴양지에서 저 혼자만 막무가내이니…." 아버지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오후에 접어들면서 신성 주장 박영훈이 배준희를 꺾었다. 5연승으로 이세돌(제일화재)과 함께 개인전적 동률 선두에 나서는 순간이다. 하지만 신성의 추격은 거기까지였다. 초조한 표정으로 프로들에게 계속 형세를 묻던 월드 주장 원성진의 어머니가 환호성을 질렀고 그와 동시에 팀 승리도 확정됐다. 장고(長考)바둑을 마무리지은 월드 한상훈의 어머니는 "아들 잘 둔 덕에 멋진 추억거리가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4대1로 이긴 월드는 2위로 뛰어올랐다.

19, 20일 양일간 한국기원서 벌어진 Kixx대 티브로드 전에선 Kixx가 3대2로 승리, 4연패 후 2연승으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1대2로 뒤진 상태에서 Kixx는 박정상 조훈현이 이겨 극적으로 승부를 뒤집었다. 특히 Kixx 3지명자 조훈현(56)은 상대 팀 2지명자 안조영을 백 불계로 제압, 개인전적 3연승(4승 2패)의 쾌조를 계속했다. 티브로드는 신예 이원도(19·5승 1패)가 거함 이창호를 꺾으며 좋은 출발을 보였으나 '허리진'의 부진으로 중위권 도약에 실패했다. 26일부터는 한게임 대 제일화재, 영남일보 대 울산디아채 전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