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yaking] 완도 소안도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 누구나 어릴 적에 한 두 번씩은 들어봤을 만한 우문이다. 카약커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성격의 질문이 있다. 그들의 비교 대상은 다름 아닌 강과 바다다. 그러나 투어링 카약 동호인들에게는 둘 다 버릴 수 없이 소중한 곳들이다. 강과 바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된다.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두루 돌아보기 위해서는 흐르는 강물도 타야하고 바다의 파도도 넘어야 한다.

모험과 도전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 이들에게 똑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상황은 약간 달라진다. 아무래도 바다에 대한 선호가 더 높게 나올 것이 틀림없다. 산에 갇혀 있고 변수의 폭이 적은 강에 비하면 바다는 훨씬 변화무쌍하고 위험하기 마련이다. 바로 그런 스릴과 불확실성이 바다의 매력이라 하겠다.

이번 달에는 바다를 찾았다. 당초 완도 앞바다의 유명 관광지 보길도가 목표였지만, 답사일이 하필 완도 장보고축제와 겹쳐 보길도에서 민박집을 구할 수 없었다. 가족과 함께 투어링에 참가하는 팀의 숙소가 없으니 대상지를 바꿔야 했다. 그러나 바다는 넓고 갈 곳은 많다. 보길도 바로 옆에 비경을 감추고 숨은 섬 소안도로 방향을 돌렸다.

소안도는 조용하면서도 한적한 곳이다. 바로 앞 보길도가 전국적인 유명세로 몸살을 앓아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섬이다. 최근 몇 해 사이 펜션과 민박 등 관광객을 위한 기반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찾는 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 게다가 섬 동쪽의 미라리 해안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있다. 답사팀은 미라리 상록수림에서 야영하며 반도처럼 튀어나온 아부산(兒負山·110.3m) 해안 절벽을 탐승하기로 투어링 계획을 잡았다.

주상절리와 해식애에 입이 떡 벌어져
본격적인 투어링은 다음 날 아침 10시부터 시작했다. 미라리에서 동쪽으로 툭 튀어나온 아부산 해안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이곳은 소안도 최고의 절경지대로 수십m에 달하는 절벽과 동굴, 주상절리 등이 병풍처럼 펼쳐진 전형적인 해식지형이 볼 만하다. 게다가 그 절벽 위에는 발을 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한 상록수림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미리라 해변 왼쪽으로 튀어나온 갯바위를 돌아서자 또 다시 넓은 만(灣)이 나타났다. 벼랑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바다 위에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병정들처럼 도열해 있었다. 덤프트럭 한 대는 들어갈 듯한 큰 동굴과 칼로 내리 친 듯 갈라진 깊은 계곡, 기둥형 바위가 발달한 주상절리 등은 한 폭의 그림이다.

포구처럼 아늑한 해안을 빠져나오니 커다란 여에 부딪힌 파도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곳은 위험하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배 한 대가 낚시꾼들을 갯바위에 내려놓기 시작한다. 감성돔이 나오기 시작하는 계절이라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질 때다.

잠시 후 족히 50m는 될 듯한 커다란 절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아부산 뒤편에 형성된 해식애로 소안도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이 절벽을 돌아서면 소안도 동쪽의 잘록하게 들어간 부분으로 들어서게 된다. 갑자기 바다가 넓어지며 평범한 섬 풍경이 펼쳐진다. 정면에 우뚝하게 솟은 대봉산이 눈길을 끌지만 해안절벽은 없다.

김 양식장 그물과 오가는 배를 피하기 위해 해안을 따라 진행하다 미라리항으로 들어갔다. 베이스캠프에서 출발해 3시간가량 여유롭게 패들링을 즐긴 것이다. 그런데 항구에 배를 대고 올라서니 바로 앞에 미라리 상록수림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해수욕장과 항구의 거리는 500m도 안 됐다. 나중에 지형도를 확인하니 바다로 돌출된 아부산 일대가 미라리에 달라붙어 혹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일부 힘이 달린 사람들은 카약을 들고 캠프로 걸어서 돌아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사진촬영을 하며 바다 위에서 여유롭게 나머지 투어링을 즐겼다.

베이스캠프로 복귀할 즈음 해녀들이 작업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다에서 만나는 해녀 할머니들은 카야커를 좋은 말상대로 생각했다. 대부분 왜 그런 힘든 일을 사서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측은해 보였던지, 해삼을 사겠다고 하니 단돈 2만원에 열댓 개의 해삼과 자연산 전복, 소라 몇 개를 덤으로 얹어줬다. 정이 넘치는 해녀들 덕분에 화려한 해물 만찬을 즐기며 소안도 투어링을 마무리했다.

여행 정보

소안도
아름다운 자연과 항일운동의 역사 살아 있어

소안도는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아름다운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천연기념물 제339호인 미라리 상록수림과 제340호인 맹선리 상록수림이 대표적인 해변의 볼거리다. 고개 너머 조용한 몽돌해변인 부상 해수욕장도 숨어 있다. 비록 규모는 작으나 절벽을 따라 아스라이 이어진 해안도로 또한 절경이다. 섬 중앙에 솟은 가학산(駕鶴山·359m)은 훌륭한 다도해 전망대 역할을 한다. 소안도 최고봉으로 봉긋하게 솟아 동서남북 어느 곳도 막힘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보길도, 노화도, 청산도 일대가 샅샅이 내려다보인다.

소안도는 항일운동의 뿌리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일제 때 주민들은 13년에 걸친 토지소유권 반환소송을 승리로 이끌었고, 수의위친계, 배달청년회 등 항일운동조직을 만들어 항일해방운동을 펼쳤다. 1990년에는 주민들이 외부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소안항일운동기념탑을 세우기도 했다. 2005년에는 기념탑 옆에 항일운동기념관을 짓고 공원으로 조성해두었다.


미라리 상록수림
명품 해송이 돋보이는 천연기념물 숲

소안도 동쪽의 미라리 해안가를 따라 400m 길이로 펼쳐진 미라리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339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상록수림의 수는 많지 않은 편인데, 이곳은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상록수림이라고 하지만 크고 멋들어진 해송이 많이 자라고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이 숲에는 메밀잣밤나무, 구실잣밤나무, 밤나무, 생달나무, 광나무, 후박나무, 보리밥나무, 사스레피나무, 동백나무 등의 상록활엽수종들이 있다.

이 숲은 바닷바람을 막아 주거환경에 도움을 주고 농경지를 보호하는 방풍림 기능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 보존가치가 큰 곳으로, 예로부터 마을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년, 바닷일의 무사를 비는 제사를 지내왔다.

 

보길도 북적거려도 소안도는 한적해
완도 화흥포항에서 소안도로 들어가는 배를 탔다. 차와 사람을 가득 실은 배가 굉음을 울리며 바다 위를 미끄러져 나갔다. 연휴를 맞아 많은 이들이 보길도로 들어가고 있었다. 좁은 객실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인 사이 어느덧 배는 노화도 동천항에 닿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배를 빠져나갔다. 올해 1월29일 노화도와 보길도를 잇는 보길대교가 완공되며 관광객들이 동천항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노화도를 떠난 배는 목적지인 소안도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보길도로 떠났다. 첫 인상부터 한적한 느낌이 드는 조용한 섬이다. 지붕 위에 카약을 실은 승합차를 앞세우고 곧바로 미라리로 향했다. 미라리 해수욕장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화장실과 샤워장을 사용할 수 있어 베이스캠프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상록수림 그늘이 드리운 둑 위에 텐트를 치고 일부 가족팀은 바로 옆 펜션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카약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1시간여만에 모두 10대가 넘는 카약이 완성됐다. 고요하던 미라리 몽돌밭이 순식간에 해변 리조트로 변했다.

사실 바다 투어링은 초보자가 도전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의 공포심을 극복해야함은 물론이요, 파도와 조류에도 대응해야 한다. 특히 처음 바다로 들어갈 때와 마지막에 땅에 오를 때 전복의 위험이 높다. 해안에 가까워 물에 빠진다 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아무래도 기분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투어링은 자신의 배를 가지고 있는 선주들이 많이 참여했다. 경험도 많고 기술도 좋은 이들이라 바다에 도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장비를 확실히 준비했고, 카약과 안전장구의 점검도 철저히  했다. 첫날 오후는 먼 거리 투어링 대신 미라리 해안 근처에서 간단히 바다를 경험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바다에 적응하기 위해 몸을 푸는 정도로 가볍게 패들링을 했다.

관련 정보

찾아가는 길
일단 완도읍까지 가서 완도에서 화흥포행 군내버스 이용(15분 소요). 화흥포나루(매표소 061-554-1010)에서 1일 16회 출항하는 카페리를 이용해 소안도로 들어간다. 이 배는 노화도를 경유, 소안도 소안항(소안도 매표소 061-553-8177)에 닿는다(50분 소요). 승용차를 배에 싣고 섬에 들어 갈 수 있다.

광주에서 완도까지 직행버스편이 1시간 간격 운행한다(2시간10분 소요). 미라리 상록수림까지는 택시(555-0017) 또는 마을버스(소안여객 554-9130)를 이용해 이동한다.

숙박
미라리 문광식 이장이 운영하는 미라문씨 민박이 이 지역에서 가장 깨끗하고 시설이 좋다. TV, 냉장고는 물론 에어컨까지 설치했고, 널찍한 마루와 방, 샤워시설 등의 편의시설을 잘 갖췄다. 지난해 새로 지은 별채에 두 개의 커다란 방을 만들었다. 바닷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긴 하지만 조용하면서도 쾌적한 휴식을 원하는 가족에게는 적당하다. 이용료는 1박 50,000원선. 전화 061-553-7288.

미라리 상록수림 옆에는 폐교를 개조해 만든 미라펜션이 있다. 사람이 많으면 조금 시끄러운 단점이 있지만, 바다가 가깝고 앞마당이 넓어 시원한 맛은 있다. 이용료 1박에 50,000원. 예약은 문광식 이장을 통하면 된다. 휴대폰 011-9733-7288.

투어링 카약 체험과 입문
카약 동호회 카약과 캠핑(cafe.daum.net/fujitakayak)을 통해 투어링 카약을 접할 수 있다. 매달 1~2회 전국의 강가 바다에서 투어를 진행하며, 신입회원은 일정액의 투어비(1일 50,000원선)을 내면 별도의 장비 없이도 투어링 체험이 가능하다. 카페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투어링 카약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문의 011-276-9098 카페지기 조구룡.

/ 글 김기환 기자
 사진 김승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