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역사의 한 부분이 지워진 나라"

스카리아는 때때로 인도 풍경과 한국 풍경을 의도적으로 대비시킨다. 인도 풍경의 키워드는 '무질서'다. 3분 분량의 플래시 애니메이션 〈패닉 시티〉는 베르디의 아리아 〈축배의 노래〉에 맞춰서 인도 델리 구(舊) 시가지의 남루한 건물들이 춤추듯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동영상이다. 이에 비해 서울 강북 도심을 찍은 사진 〈서울, 아시아의 영혼〉은 빌딩 숲이 수직으로 치솟은 풍경이다.

스카리아는 한국의 휴대전화 문화도 흥미로워했다. "지하철에 타면 모든 사람이 휴대전화를 가지고 뭔가를 하고 있어요. 문자를 보내고, 인터넷을 하고, 동영상을 보고, 사진을 찍고, 전화를 걸고…. '지하철'이라는 공공장소가 수많은 개인들의 사적인 공간으로 변신하는 셈이랄까요?"

스카리아의 다음 행선지는 영국 노리치와 미국 뉴욕이다. 스카리아는 "나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인간이 각각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하기 위해 작품을 한다"며 "인간 존재의 미세한 차이와 근본적인 동질성이 나를 매혹한다"고 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02)547-7887

"나는 인류학을 탐구하듯 사진에 접근한다"고 인도 사진작가 지지 스카리아(Scaria·35)는 말했다. 그는 인도, 이탈리아, 트리니다드 토바고, 이스라엘, 영국 등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각국의 독특한 문화를 소재로 사진과 비디오를 찍고, 설치작품과 조각을 만들어왔다. 그는 작년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창동 스튜디오에 머물며 한국 사회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서울 신사동 H큐브 갤러리에 걸린 사진 20여 점이 그 결과물이다.

스카리아의 눈에 비친 한국은 "교회가 많은 나라, 술집은 붐비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집으로 초대하는 일은 드문 나라, 모든 사람이 깨끗한 옷을 입은 나라, 지하도 노숙자들이 능숙하게 마분지 상자로 '숙소'를 조립했다가 아침이면 착착 접어서 치우는 나라"이다. 그는 "한국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동시에, 역사의 한 부분이 지워져 버린 듯한 나라"라고 말했다.

"한국은 식민지배·한국전쟁·분단·군사독재·민주화·외환위기를 숨가쁘게 겪었죠. 압축성장을 통해 국가 전체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고요. 제가 '한국 풍경을 보고 싶다'고 하면 한국인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신축 기와집이 들어선 관광지로 저를 안내했어요."

스카리아는 "어떤 의미에서 진짜 전통은 존재하지 않고, 만들어진 전통만 남아있는 셈"이라고 했다. 시민들이 붉은 군복을 입은 광화문 수문장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장면을 찍은 유머러스한 사진 〈신기한 주제〉에서 그런 시각이 잘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