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촉촉한 시선] '취향의 재발견'을 위하여

'넥스트플러스(Nextplus) 여름영화축제'라는 행사가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하는 행사다. 여름 휴가나 방학 기간에 예술영화전용관들이 기획전을 마련해서 다양한 예술영화를 만끽하자는 취지다. 2회인 올해 축제는 오는 7월 25일부터 8월 14일까지. 작년에는 8개 극장뿐이었는데, 이번엔 25개 극장으로 대폭 늘어날 예정이다. 씨네큐브, 스폰지하우스, 미로스페이스, 하이퍼텍나다 등 이름난 예술영화극장은 물론, 경기 부산 인천 대구 등 전국의 작은 극장까지 포함됐다.

당연히 취지 자체야 나무랄 데 없다. 초대형 오락 영화 한두 편이 지배하는 충무로의 여름 시장에서 독특한 무늬와 여백을 지닌 영화들의 대면(對面) 기회를 늘리자는 선량한 의도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 이상과 현실이 100% 일치하기란 쉽지 않은 일. 얼마 전 만난 광화문의 한 예술영화전용관 대표는 지난해의 여름영화 축제기간 동안 관객이 평소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종로의 또 다른 참가 극장 한 곳을 알아봤다. 지난해 축제기간 한 달 동안 2개 관에서 3500명도 안 되는 관객이 들었다고 했다. 하루 5회 정도 상영한다고 보면, 한 회 평균 10명 조금 넘는 관객이 영화를 봤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극장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왜 이런 역효과가 난 것일까. 예술영화 전용극장 인지도를 높이고 예술 영화 관객을 늘려보자고 시작한 축제였는데 말이다.

판단에 따라 조금 다르기는 하겠지만, 전문가들은 요즘 예술영화 한 편당 고정 관객을 1000~3000명으로 추산한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처럼 강력한 참을성을 요하는 영화에도 무려 2만명이 줄을 섰던 1995년의 예술영화 전성기를 떠올리면 1/10로 쪼그라든 것이다. 하지만 이게 2008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 블록버스터에 대한 영화평론가들의 집단적 '저주'도 시장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역으로 예술영화(혹은 다양성 영화)에 대한 이들의 집단적 '열광'도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대답 없는 메아리다.

이런 상황에서 단지 극장만 늘려 이런 축제를 한다는 것이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예술영화 전용관이 적어서 관객들이 예술영화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관객들이 예술영화 극장에 갈 동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대답이 될 것이다. '달과 6펜스'를 쓴 서머셋 모옴이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책이 즐겁게 읽히려면 그 책이 직접적으로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라고.

관객을 유혹할 수 있는 영화의 준비는 기본이거니와, 공급자인 극장보다 수요자인 관객에게 더 혜택을 주는 축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판단이다. 예술영화 전용관 숫자를 늘리는 데 드는 예산을 조금 떼어서, 가령 연극의 사랑티켓처럼 예술영화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파격적 할인 혜택을 주는 방식은 어떨까. 지금처럼 축제 기간 중 두 번 연속으로 극장을 찾아야 1000원 할인해주는 정도로는 "교양 따윈 필요없어"라고 외치는 요즘 관객을 유혹하기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