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상상이 만든 기발한 디자인 작품

＃1. 밤늦게 엄마 몰래 만화책을 보려는 초등학생 A. 이미 엄마와는 '굿 나잇' 인사를 마쳤다. 잔머리를 굴리는 A. '엄마한테 안 들키고 숨겨둔 만화책을 볼 수 없을까.'

# 2. 싱글남 B.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 계획에 없던 마트에 들렀다. 비닐봉지 하나에 50원. 이렇게 쌓인 비닐이 수북하다. '항상 휴대할 수 있는 장바구니는 없나.'

디자이너 오세환(37·계원예술대 겸임교수·사진)씨는 소소한 일상 속 장면을 디자인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엄마 눈을 피해 만화책을 보려던 유년의 추억은 '베개 조명'으로 부활했다. 폭신한 스펀지 베개 한 면에 딱딱한 플라스틱 조명이 달려 있다. 스위치 달린 전선이 매달려 있어 졸음이 쏟아질 땐 손을 뻗어 끄면 된다. 장난기 묻어나는 베개조명은 영국의 유명 인테리어 체인점 해비타트(Habitat)에서 판매할 예정인 인기 제품이다. 싱글남의 엉뚱한 상상은 '장바구니 티셔츠(작품명 티백)'로 이어졌다. 평범한 티셔츠에 지퍼를 달아 쇼핑백으로 변신할 수 있게 만들었다.

오씨는 디자인에 심드렁한 이들의 호기심까지 자극하는 재기발랄한 작품으로 국내 디자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다. 지난해 밀라노가구박람회에서 '영 앤드 디자인(Young & Design)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뫼비우스 띠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뫼비우스 의자'는 미국의 유명 사무용가구 회사인 허먼밀러에서 생산 협의 중이다.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철학은 '이종(異種)결합'이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존재하는 두 개의 사물이 디자인을 통해 하나가 되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베개조명, 장바구니 티셔츠뿐만 아니다. '필터 라이트'라는 이름의 조명은 낡은 카메라 삼각대 다리를 하고 있다. '디저트 라이트'는 코코넛으로 만든 과자 안에 LED 조명이 숨어 있다. 디저트를 먹고 나면 조명이 남는다.

"디자인요?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거예요. 밤중에 부모님 몰래 이불을 뒤집어쓰고 만화책 읽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지잖아요. 그런 행복한 추억을 담는 작업이 제 임무라 생각합니다." 오씨는 고(故) 백남준 선생이 한 TV광고에서 외친 '내 인생이 끝날 그날까지 난 창조 창조 창조!'라는 카피가 인생 신조라며 "끊임없는 크리에이티브로 죽을 때까지 디자인하는 것이 꿈"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