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피아노와 이빨' 600회의 초대

무대 위 피아니스트는 격정적으로 건반을 두드렸다. 비틀스의 '헤이 주드(Hey Jude)'에서 시작한 선율이 고조됐다. 그가 왼쪽 발을 구르면서 건반을 내리쳤을 때 피아노 줄 하나가 끊어졌다. 연주는 계속됐고 150여 관객은 눈치 채지 못했다. 서울 압구정동 발렌타인 극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제 마음이 설렙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피아노와 이빨' 590회 공연을 시작합니다."

첫 곡 연주를 끝낸 윤효간(45)씨가 무대 중앙에 나와 인사했다. 그는 "하루하루 공연이 제겐 역사의 무대"라고 했다. "2006년 6월 '헤이 주드'를 연주하다 피아노 줄이 끊어지고 나서 오늘이 두 번째네요. 이런 게 바로 라이브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관객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피아노와 이빨'은 음악(피아노)에 입담(이빨)을 결합한 이색 콘서트다. 그는 관객 숨소리까지 들릴 듯한 소극장에서 팝송과 동요 등을 편곡해 연주하고 자신의 음악 인생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2006년 5월 12일 시작, 이 극장에서만 9만여 명이 관람한 이 공연이 6일 600회를 맞는다.

"거의 매일 무대에 오르지만 같은 곡도 그날 느낌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주해요. 관객과의 호흡, 공감대가 중요합니다. 오늘은 일찌감치 줄이 하나 끊어졌으니 평소와 달리 연주할 수밖에 없었죠. 저는 편곡한 걸 악보로 안 옮기거든요. 모든 선율은 다 제 머릿속에 있어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라고 하지만 그는 대학에서 작곡이나 피아노를 전공한 적이 없다. 부산 대동고 졸업이 최종 학력이다.

"추억의 팔각형 '유엔성냥' 아시죠? 제가 그 집 막내아들입니다. 꽤 부유한 환경이었죠. 아버지는 우리 4형제에게 악기 하나씩을 가르쳤어요. 저는 7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죠."

착실하게 피아노 레슨을 받던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제가 제일인 줄 알았다가 보기 좋게 떨어졌죠. 제가 놀란 건 스무 명의 학생들이 피아노를 치는데, 마치 한 사람 같았다는 거예요. 자세도 같고, 표정도 같고, 손놀림까지…."

다음 날 그가 피아노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악보에 크게 치라고 표시된 데서 작게 치면 어떻게 되나요?" "너 왜 쓸데없는 걸 묻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그래도 의문이 안 풀려서 혼자 연습하며 악보보다 한 옥타브 위에서도 쳐보고 악상기호랑 반대로 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저는 그때 이미 틀에 박힌 연주가 싫었어요. 왜 예술까지 주입식으로 교육합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음악대학에 진학하고, 유학까지 가서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길 바라셨죠. 아버지와의 전쟁이 시작됐어요."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가출해 7번 실패했고 고교 졸업 직전에 정식으로 가출해 3만8000원 들고 서울로 왔다"고 했다.

"밤마다 나이트클럽에서 일하고 낮에는 레코드판을 들으며 악보를 받아적기 시작했어요." 그는 "독학으로 화성학을 익히고, 비틀스를 들으며 편곡과 연주법도 터득했다"고 했다. 1992년 KBS 관현악단에 피아니스트로 들어갔고 이후 유명 가수들의 음반 작업에 연주자, 편곡자로 참여했다. 가출 13년 뒤 만난 부모는 음악가로 자리 잡은 그를 보고 기뻐했다.

"고졸이라 마음 아픈 일도 많이 겪었지만 학교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내게는 남들과는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에 내 음악에 더 집중할 수 있습니다. 예술적 영감은 배워서만 되는 게 아니고 많이 느끼고 상상해야 합니다. 나만의 베토벤을 칠 수 있어야죠."

관객은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평일에는 연인들, 20~30대의 여성 관객이 많고, 주말에는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많다. "청각장애인 30대 남자분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제 음악을 들으면서 계속 눈물을 흘리더군요. '어떻게 소리를 들으셨느냐'고 물었더니 '진동으로 들었다'고 했어요. 그때 소리가 꼭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윤씨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이빨 게스트'로 초청한다. 아나운서 김동건, 국회의원 원희룡, DJ 김기덕, 새(鳥) 박사 윤무부,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말리 홀트…. 그동안 250여 명의 게스트가 무대 위에서 그와 대화했다. 그는 "어떤 분야든 자기 인생을 자신 있게 산 분을 초대한다"고 했다.

"제가 유럽에 갔을 때 우리 동요를 연주했더니 '어떻게 너의 나라 아이들은 이런 클래식을 듣고 자라냐'면서 놀라더군요. 동요는 전 세계에서 통용될 수 있는 문화 콘텐츠예요. 또 동요는 시간 여행이죠. 우리 꿈, 어린 시절을 통째로 떠올리게 해서 그 시절로 돌려놓잖아요."

공연 없는 월·화요일엔 지방학교를 찾아다니며 연주회를 한다. "각 나라의 구전 가요 같은 고유 음악을 '윤효간식'의 음악으로 만들고 싶어요. 9월에 일본에서 작업하고, 내년 2~4월에는 유럽에 연주 여행을 갈 계획입니다. '피아노와 이빨'이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 성 영화도 만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