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피아니스트 김선욱 고별 연주회 "내 스승은 언제나 한 분"

지난 2006년 리즈 콩쿠르 우승 이후 피아니스트 김선욱(20)은 ▲해외 교향악단 최다 협연 ▲런던 필하모닉 현지 데뷔 ▲세계적 음악 매니지먼트 회사인 아스코나스 홀트 계약 체결까지 숨쉴 틈 없이 달려왔다. 이달 영국 진출을 앞두고 마지막 고별 연주회가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그가 선택한 지휘자는 "내 경력에 적히게 될 스승은 언제나 한 분으로 족하다"고 말했던 스승 김대진이었다.

최근 수원시향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김대진과 제자 김선욱이 함께 고른 협연곡은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이었다. 타악기와 더불어 폭풍처럼 몰아치는 첫 소절에 사실상 대부분의 성패가 달려 있는 곡이기도 하다. 1악장 도입부터 김선욱의 건반은 강건하고 대담했다. 자기 과시에 치우쳐 음표를 흘리고 지나치는 법 없이, 템포를 여유 있게 가져가면서 꼼꼼히 건반을 짚고 넘어갔다.

지휘봉을 잡은 김대진이 연주 도중에도 연방 협연자에게 눈길을 보내며 드러내던 표정은 그냥 '제자 사랑'의 따뜻함이었을까, 아니면 김선욱의 건반과 운지(運指)에 대한 작은 경탄과 질책이었을까. 기나긴 1악장이 끝나자 스승은 제자에게 짧은 윙크를 보냈고, 3악장이 끝난 뒤에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포옹했다.

2악장 '아다지오'에서 김선욱은 악장을 관통하는 긴 호흡을 정리해내는 힘이 다소 부족했고, 곧이어 연주되는 마지막 3악장에서는 몇 차례 미스터치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페달이 아니라 손끝을 통해 강약 대비를 빚어내며 풍부한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주법(奏法)은 객석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짙은 호소력을 갖추고 있었다.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도 화장기 짙은 과장을 꺼리는 대신, 1·3악장에서 강건하게 곡을 구축했다. 일종의 형용모순으로 들릴지 몰라도 '남성적 서정성'이야말로 갓 스물 피아니스트가 지닌 매력이다.

피아니스트 임동혁·손열음·김태형·김준희 등 10~20대 '앙팡 테리블(Enfant Terrible)'의 선두군(群)에 속했던 김선욱은 이번 연주를 뒤로 한 채, 당분간 런던으로 음악 보금자리를 옮긴다.

1982년생 중국의 '쌍두마차'인 피아니스트 랑랑과 윤디 리, 200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라팔 블레하츠(Blechacz)까지 넘어야 할 산들이 '첩첩산중(疊疊山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음악성만이 아니라 언제나 냉혹하고 급변하는 세계 음악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성까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번 연주는 결과적으로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첫걸음이 된 셈이다. 영화 《스타 워즈》의 주문을 담아 보내면, 그에게 "언제나 포스가 함께 하기를(May the force be with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