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의 경계를 포착하다

이 풍경은 쓸쓸하다. 밤은 푸르고 공중전화 부스는 텅 비어있다. 그뿐이라면 흔한 얘기다. 어느 도시에나 이런 풍경은 있다. 그런데 수상하다. 이 사진에는 다른 뭔가가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 발 다가서던 관객이 빙긋 웃는다. 전화 부스 옆, 어둠이 묽게 괸 땅바닥에 장난감 병정 수십 개가 우두커니 서 있기 때문이다. 병정들은 거인국에 온 소인들처럼 우습고 쓸쓸하고 사랑스럽다. 백승우씨의 작품 〈현실 세계(Real World)〉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포토 온 포토그래프 전》이 열리고 있다. 김도균·박현두·박형근·백승우·원성원·이명호·정연두씨 등 국내 정상급 30~40대 작가 7명의 사진 42점이 걸렸다. 이들은 모두 서울과 유럽, 일본, 미국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해온 작가들이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한국 사진계를 풍미한 '유형학적 사진'(類型學·typological photography)의 자기장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 유형학적 사진은 20세기 후반 세계와 한국을 뒤흔든 조류다. 특정한 유형의 피사체를 잇달아 찍는 것이 특징이다. 가령 여러 마을을 돌며 학교만 찍는 작가도 있고, 오페라 극장만 찍는 작가도 있고, 공장, 관공서, 증권거래소 등을 찍는 작가도 있다. 이들은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냉철하고 중립적인 시선으로 피사체를 포착했다.

이와 달리 이번《포토 온 포토그래프 전》에 참여한 작가들은 꿈과 현실, 실재와 가상을 가볍게 비틀고 자유롭게 뒤섞는다. 가령 원성원씨의 사진 〈꿈의 방〉시리즈는 작가의 친구들이 마음 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방'을 유머러스한 합성 사진으로 표현한 것이다. 〈꿈의 방―미칼리스〉는 '미칼리스'라는 청년이 갖고 싶어하는 방이다. 벽에는 천장까지 책이 꽂혀있고, 바닥에는 계곡 물이 흐르며, 방 주인인 미칼리스는 침대에 앉아 석쇠에 물고기를 구워 먹는다.

이명호씨의 〈나무〉시리즈는 들판 가운데 나무 그림이 찍힌 흰 장막을 세워놓고 찍은 사진이다. 구도는 단순하고, 풍경은 황량하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관객이 보고 있는 게 과연 '나무 그림이 찍힌 장막' 사진인지, '흰 장막 앞에 서 있는 나무' 사진인지 알쏭달쏭해지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윤옥 큐레이터는 "하나의 기준이나 방법론으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키워드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사진 팬들에겐 흥미로운 전시다. 유형학적 사진 이후의 한국 사진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지, 요즘 주목 받고 있는 작가들이 어떤 지향점을 보여주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8월17일까지. (02)720-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