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보물 영화 '카운터페이터'

흔히 장르의 파격성, 소재의 참신함으로 주목받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또 그거야?"라는 반응부터 나오는 영화가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2008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작 '카운터페이터'는 어쩔 수 없는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또다시 홀로코스트를 다루기 때문이다.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유례없이 참혹한 비극은 그간 영화적 소재로 심심치않게 쓰여 왔다. 관객은 이미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귀도의 부성애(인생은 아름다워), 스필만이 절망의 나락 한가운데에서 치던 피아노 선율(피아니스트)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그렇다면 '카운터페이터'는 어떤 방식으로 홀로코스트를 풀어냈을까.

살로몬 소로비치(카알 마르코빅스)는 타고난 미적 재능을 바탕으로 각종 화폐, 문서를 위조하는데 능한 위조의 일인자다. 어느 날 그의 작업실로 경찰이 들이닥치고, 위조 혐의로 체포된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로 끌려간다. 수용소 내에서 독일군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목숨을 연명하던 소로비치는 유대인 기술자들과 함께 사상 최대의 화폐 위조 작전인 '베른하트 작전'에 투입된다. 독일군이 시키는 대로 완벽한 위조 화폐를 찍어내는 한 이들은 다른 수용자보다 월등히 쾌적한 환경을 제공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위조를 완벽하게 해내면 해낼수록 독일군이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구실을 돕는 격이 된다는 것. 바깥에서는 매일같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다른 수용자들의 절규와 총성이 들려온다. 가시방석도 이런 가시방석이 없다.

여기서 양심적 지식인을 상징하는 인물인 브루거(오거스트 디엘)는 중간 작업을 엉망으로 만들어 화폐 위조를 최대한 지연시키려 한다. 상부의 압력은 점차 거세지고 소로비치의 고뇌는 깊어간다. 완벽한 위조는 이제 불가능한 도전이 아니라 불가능해야만 하는 도전이 된 것이다.

'동료들의 목숨이냐, 민족의 양심이냐.' 갈림길에 선 영혼들의 불편한 삶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는 피어나고, 영화 전반에 구슬픈 듯 느긋하게 흘러나오는 탱고 선율은 위태롭게 지속되는 상황을 은은히 관조한다. 감독은 장면마다 적절한 음향과 음악을 사용해 영상미를 극대화시켰다.

"오늘 총살당하느니, 내일 가스실에 가겠어."라는 소로비치의 말은 처절하고도 의미심장하다. 우스갯소리로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 산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이지만, 생존에의 욕구가 단지 살아가는 것만은 의미하지는 않을 터. '카운터페이터'에 등장하는 사무치도록 생생한 캐릭터들을 자연스레 쫓다보면, 삶 자체가 주는 의미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어렴풋한 답을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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