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yaking] 가평 자라섬

그 옛날 가평의 자라섬은 존재감이 미미했던 곳이다. 그저 강 속에 있던 모래와 자갈 덩어리 정도로만 여겨졌다. 해방 이후 중국인 몇 명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이 섬은 ‘중국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땅에 중국섬이라는 이름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래서 가평군은 1986년 지명위원회를 열어 자라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됐다. 생긴 모양이 자라와 닮았고, 비가 오면 물이 불어 조금 잠겼다가 다시 나타나는 모습에서 기원한 이름이다.

최근 들어 가평군이 자라섬을 문화와 축제의 공간으로 단장하기 시작하며 그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2004년부터 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올해로 벌써 다섯 돌을 맡게 됐다. 오는 7월25일부터는 2008 가평 세계캠핑대회가 자라섬에서 열린다. 이를 위해 경기도는 220억 원을 들여 대규모 오토캠핑장을 조성했다. 자라섬은 금세기 들어 괄목할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가평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자라섬으로 향했다. 캠핑대회도 재즈페스티벌도 없는 날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카약이 있다. 자라섬은 북한강의 섬이다. 당연히 강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하나 지금은 아니다. 가평 방면에서 진입할 수 있도록 섬 서쪽 수로에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쪽 측면은 온전히 북한강에 노출되어 있다. 이곳의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수시로 모터보트 오가는 청평호반
자라섬 오토캠핑장이 개방되면 야영장에서 곧바로 배를 띄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행사가 열릴 때까지는 입장이 통제되고 있어 외곽으로 좀더 빠져나갔다. 가평군 소재지로 들어가는 사거리에서 춘천 방향으로 진행해 경강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갈림길로 내려섰다. 이곳에 강변으로 진입하는 샛길이 나 있다.

경강교 아래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공간에 차를 세우고 카약을 조립했다. 오늘은 후지타 조립식 카약 동호회인 ‘카약과 캠핑’의 카페지기 조구룡씨 외 두 명의 회원이 참가했다. 여기에 취재팀까지 합세해 총 넉 대의 카약을 띄웠다. 화려한 원색의 카약이 순식간에 완성되자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경강교 부근은 수상레포츠 업체들이 많아 사람들의 왕래가 제법 잦았다.

완성된 카약을 북한강에 띄웠다. 비 온 뒤라 그런지 강물이 유독 맑아 보인다. 의암댐과 청평댐 사이에 고립된 강물이라 흐름이 거의 없이 잔잔했다. 호수 같은 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그 때문인지 이곳에는 모터보트를 타거나 수상스키를 즐기는 이들이 아주 많다. 바나나보트를 매달고 달리는 배도 수시로 오간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강물 위에 긴 흔적이 남는다. 그 여파가 카약에 전달되어 바다에서 만나는 파도와 같은 흔들림이 전해온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즐겁다. 변화가 없는 밋밋한 물은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좋은 경치라도 쉴 새 없이 펼쳐진다면 모를까. 호수처럼 고요한 곳은 흥분과 긴장은 덜하기 마련이다.

모터보트가 오가는 모습을 보며 상류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경춘선 철도 밑을 지나 춘천 방면 강변에 가까이 붙어 서서히 진행했다. 수상레포츠업체가 상류 쪽으로 두 곳이 더 있었다. 손님들은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동력을 이용하는 레포츠는 순간적인 짜릿함과 스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계라는 매체를 통해야 하기에 아무래도 자연과 동화되기는 힘들 것이다.

카약은 내 자신이 물이 되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저 멀리 모터보트를 타고 달리는 이들이 지르는 소리는 잠시 후면 사라질 가벼운 쾌락이다. 하지만 팔이 뻐근해질 정도로 패들을 저어가며 느끼는 만족감은 최소한 하루는 유지된다. 이것이 바로 친자연주의 레포츠 카약의 매력이다.

철교 위로 지나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햇살이 따가워지는 계절이 다가왔지만 북한강 물은 아직도 시원했다. 패들링으로 뜨거워진 손을 식히려다 예상 외로 차가운 강물에 화들짝 놀랐다. 여름이 이미 우리 곁에 와있는 듯해도 물속의 계절은 더디 오는 모양이다. 네 바퀴 오토바이를 탄 처녀들이 강변의 비포장길을 굉음을 내며 달려간다. 황사 보다 지독한 먼지를 날리는 그녀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경강교 상류 3.5km 지점의 춘성대교가 오늘의 반환점이다. 넓은 강물 가운데 버티고 선 교각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하류로 패들을 저어갔다. 조용한 강물은 대화를 나누기 좋은 장소다. 나란히 배를 붙여서 진행하며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패들을 젓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닿는다.

경춘선 열차가 통과하는 철교 아래 멈춰서 기다렸다. 경강교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진기자 김승완씨가 정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기차가 지나갈 때 그 아래를 통과하는 카약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함이다. 하지만 마음먹고 기다리면 오히려 조급증이 생기는 법.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기다리는 기차는 오지 않았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할 즈음 가평쪽에서 기적소리가 들렸다.

일시에 “전원 전진 앞으로!”를 외치며 카약을 다리 밑으로 저어 나갔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예상 외로 철교를 지나가는 기차의 속도가 빨랐다. 사진은 어떻게 찍혔는지 몰라도 갑갑한 마음은 조금 풀렸다.

경강교 근처의 매운탕집으로 이동해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하류 탐사에 나섰다. 드넓은 강물 위를 오가는 모터보트가 점점 많아졌다. 아래쪽 남이섬 부근에서 출발한 배들도 경강교 위쪽까지 진출하며 조금 혼잡한 느낌이다. 안전을 위해 강변쪽으로 카약을 붙여 천천히 진행했다.

야영장이 조성되어 있는 가평 세계캠핑대회장을 지나 조금 나아가니 자라섬 옆에 떠있는 무인도들이 보인다. 높게 자란 느티나무와 미루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있어 멋진 풍광이다. 자라섬과 무인도 사이의 수로를 따라 들어가며 강변의 나무들이 만들어 준 그늘을 즐겼다.

자라섬 캠프장이 카약 해방구 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제법 물살이 빨라지며 속도가 붙었다. 자라섬이 끝나는 곳에서 배를 멈추고 섬에 올랐다. 여기를 빠져나가면 남이섬까지 커다란 호수 같은 강이 펼쳐진다. 주말이라 과속으로 달리는 보트도 너무 많았고, 특별히 재미도 없을 것 같아 이곳에서 투어링을 끝내기로 했다. 배를 땅 위에 올려놓고 앉아 맥주 한 잔으로 더위를 식혔다.

자라섬은 서울에서 가까워 수도권 거주자들은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강변을 따라 캠핑하기 좋은 평지가 널려 있다. 재즈페스티벌 같은 특별한 행사만 없으면 거의 비어 있으므로 언제든 배를 타고 들어와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세계캠핑대회가 끝나는 8월 이후에는 야영장에 베이스캠프를 만들어 놓고 곧바로 강물에 배를 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자라섬은 수도권 패들러들의 해방구가 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췄다.
 

관련 정보

찾아가는 길
서울 방면에서 자가 운전으로 접근할 때는 46번 경춘국도를 탄다. 퇴계원에서 대성리 구암동산까지 이어진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서울(강북)→46번 국도(경춘국도)→구리→남양주→마석→청평→가평 / 서울(강남)→올림픽대로→팔당대교→6번 국도→능내리→45번 국도→새터 삼거리→청평→가평 / 경기 북부→의정부→43번 국도→광전리→전도치터널→47번 국도→진접→내촌→베어스타운→신팔리 사거리(우회전)→37번 국도→현리→청평→46번 국도→가평 <서울에서 1시간30분 소요>

가평에서 춘천 방향으로 경강교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샛길이 나 있다. 이 길을 이용해 경강교 아래에 주차하고 배를 띄운다.

서울→가평 동서울종합터미널(ARS 02-446-8000)에서 매일 수시(06:00~22:00) 운행. 1시간20분 소요, 요금 5,600원. 상봉터미널(02-323-5885)에서 매일 수시(06:00~21:30) 운행. 1시간20분 소요, 요금 5,100원.

청량리역→가평역 무궁화호 열차가 매일 19회(06:15~22:30) 운행. 1시간30분 소요, 요금 4,000원. 청량리역 전화 1544-7788, 가평역 전화 031-582-7788.

숙박
가평군 내에는 많은 숙박시설이 있다. 청평호 둘레 호수 전망이 좋은 곳에 깨끗한 숙박시설이 몰려 있다. 자라섬과 가까운 경강교와 춘성대교 사이에 별이야기 펜션(http://starstory.co.kr), 파멜라펜션(www.pamelapension.com),  트윈스빌(033-263-3343), 즐겨찾기(www.pensionbookmark.com) 등이 있다. 가평읍내에는 가평관광호텔(031-581-0505)과 모텔여관(031-582-2960) 등 숙박시설이 많다.

투어링 카약 체험
카약동호회 카약과 캠핑(cafe.daum.net/fujitakayak)을 통해 투어링 카약을 접할 수 있다. 매달 1~2회 전국의 강과 바다에서 투어를 진행하며, 신입회원은 일정액의 투어비(1일 50,000원선)을 내면 별도의 장비 없이도 투어링 카약 체험이 가능하다.

카페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투어링 카약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문의 011-276-9098 카페지기 조구룡.


 / 글 김기환 기자
  사진 김승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