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수처럼 내리긋는 선배 명상가처럼 덧칠하는 후배

18일 서울 소격동 학고재 신관과 본관에서 《김호득 전》과 《강경구 전》이 나란히 개막했다. 친구들 두엇 넉넉하게 걸어갈만 한 짧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팔뚝만한 붓에 검은 먹을 묻혀 일필휘지한 김호득(58)의 추상화와 색색 물감을 겹겹이 칠해 깊고 거친 맛을 낸 강경구(56)씨의 구상화가 걸린 것이다.

두 사람의 작풍은 극과 극처럼 달라 보여도, 평생 한국화 외길을 걸은 중량급 화가라는 점은 공통점이다. 절친한 대학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중섭미술상도 수상했다. 그래서 둘의 전시를 두고 '2인전'이라는 사람도 있고, '두 개의 개인전'이라는 사람도 있다.

작가들 스스로는 "색깔이 다른 재즈 연주자 두 명이 한 곳에서 동시에 연주한다고 봐달라"고 했다. 두 화가의 대화는 즉흥 합주처럼 흥겹게 화음이 맞았다.

"나는 에너지를 모아서 한번에 폭발시키듯 그려요.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다 일순간 사냥감을 덮치는 것처럼. 폭포를 그릴 땐 내가 물이 된 듯이 폭포의 속도대로 붓을 내리긋지요." (김호득)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캔버스 위에 겹겹이 색을 쌓아 올리다가 어느 순간 붓을 놓고 물러앉지요. 며칠씩 그림을 들여다보며 '끝났나?' 자문(自問)하고요." (강경구)

"그런 면에서 동생은 나와 다르네. 나는 어디가 끝인지는 분명한데 '이게 쓸만한 놈인가, 아닌가' 보는 게 어렵거든. 때로는 1년이 지나도 알쏭달쏭할 때가 있어요." (김호득)

선배인 김씨는 "나는 젊어서 수묵으로 일필휘지하는 동양화 전통에 크게 반발했다"고 했다. 그는 나이 먹으며 근본으로 회귀했다. 먹빛이 은은하게 스민 광목에 큰 붓으로 한글 '가'자(字)의 좌우를 뒤집어 그린 〈거꾸로 가〉가 그 예다. 힘차게 내리그은 획이 흡사 화폭 위에서 힘차게 내달리는 듯 하다.

그런 그가 보기에 후배 강씨는 "젊어서는 전통을 충실히 익히다가, 나이 먹으면서 대담하게 전통을 한 걸음씩 앞으로 밀어붙이는 작가"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검은 바위산을 그린 〈천 개의 바람〉과 〈마애불〉, 푸른 바다와 남자를 그린 〈썰물〉과 〈허튼 날갯짓〉이 그렇다.

강씨는 "흔히 '한국화'하면 문인화만 생각하는데, 그건 좁은 생각이에요" 했다. "왜냐하면 문인화는 한국화 전통의 극히 일부니까요. 어떤 의미에서 프로페셔널 화공의 그림이 아니라, 아마추어 선비의 여기(餘技)였고요. 고구려 벽화, 고려 불화…. 다양한 전통을 음미하면서 동시에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새로운 시대와 몸을 섞어야지요."

이번 전시에 선배 김씨는 27점을, 후배 강씨는 19점을 걸었다. 보다가 숨이 턱 막히지 않게, 그러면서도 밀도 있게 꾸린 전시다. 미술평론가 이주헌(47)씨는 도록 서문에서 김씨의 추상화에 대해 "단순함과 미묘함이 어우러져 볼수록 감칠맛이 난다"고 썼다. 또 강씨의 구상화에 대해서는 "아크릴이 눌리고 짓이겨진 끝에 뭉쳐 도는 모습, 그것들이 모여 왁왁 대듯 울림의 파장을 낳는 모습이 자못 비장감마저 불러일으킨다"고 썼다. 전시는 다음달 2일까지. (02)739 -4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