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유망주 몰리는 아시아프에 내 그림 전시할 수 있어 설레"

한국·일본·대만·싱가포르·인도 등 아시아 5개국 현대미술 유망주들이 한꺼번에 한국에 몰려온다. 다음달 6~17일 구 서울역사에서 열리는 '아시아프'(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에 대해 미술계 전문가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라며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반인 관객들에겐 여름방학을 맞은 자녀들과 함께 유서 깊은 구 서울역사를 거닐면서 젊은 작가들의 에너지 충만한 작품을 감상하고, 가슴 뭉클하게 와 닿는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해서 집안에 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폭염 속에서도 작품 마무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참가 작가들의 전시회 준비 현장과 작품을 해설하고 작품구입을 안내할 학생 아트 매니저들의 각오를 들어봤다.

서늘하게 그늘진 층계참에서부터 물감 냄새가 진동했다. 대전 오정동 한남대 미대는 여름방학인데도 청년 작가들의 열기와 에너지가 충만했다. 층계참과 복도와 작업실에 목제 테이블과 이젤, 캔버스가 쌓여있고, 물감 묻은 작업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방마다 틀어박혀서 남들이 오고 가는 줄도 모른 채 골똘한 얼굴로 붓질을 했다.

한남대 미대는 학부와 대학원 합쳐서 230여 명이 재학 중이다. 그 중 10%에 육박하는 22명이 평균 3대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다음달 6~17일 구 서울역사에서 열리는 '아시아프'(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 미술축제) 참가 작가로 선정됐다. 아시아프는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아시아 5개국 유망주 777명의 작품 1500여 점을 일반인 관객들에게 전시하고 판매하는 축제다. 행사의 규모와 공익성, 참가작가들의 다양성 등을 기준으로 볼 때 전례가 없는 문화행사이기도 하다.

정진휘(24·대학원 2년)씨는 "아시아프 참가작가 모집 공고를 봤을 때부터, 아시아의 동시대 유망주 777명을 뽑은 전시에 나도 꼭 들고 싶다는 욕망이 끓어올랐다"며 "내 옆에 누구 그림이 걸릴지 궁금하고 흥분된다"고 했다. 한휘건(24·미대 4년)씨는 "졸업 후에 힘들어도 꼭 '작가'로 살아남고 싶다"며 "아시아프를 통해 아무 대가 없이 내 그림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어 설렌다"고 했다.

아시아프 참가자격은 '국내외 미대 학부와 대학원 재학생, 혹은 30세 이하 작가'였다. 작가로나 인간으로나 아직 출발점에 섰을 뿐인 나이이지만, 힘든 먼 길을 기꺼이 가겠다는 의지만은 생애 가장 충만할 때다.

신민상(22·미대 4년)씨는 작업실 한 쪽에서 가는 붓으로 출품작에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었다. 앳된 얼굴이지만 붓끝에 정신을 모은 표정이 진지하고 차분했다. 경남 사천이 고향인 신씨는 척추측만증 때문에 중·고교 시절 내내 전국의 병원을 돌며 치료를 받았다. 신씨는 "나는 '화가'라는 낱말을 정확하게 쓸 줄 모르던 나이부터 줄곧 화가가 되고 싶었다"며 "부모님은 '이젤 앞에 오래 앉아있어야 한다'고 걱정하셨지만, 미술을 택한 마음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고동환(26·미대 4년)씨는 "무엇보다 아시아프를 통해 내 그림을 국내 정상급 화상(畵商)과 평론가, 큐레이터와 컬렉터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며 "지방의 젊은 작가들에겐 도약의 기회"라고 말했다.

이 학교 신영진(45) 교수는 "우리 세대의 은사(恩師)들은 '판매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순결하지 못한 짓'이라고 나무랐다"며 "순수하게 미술을 추구하도록 독려하신 말씀이지만, 경제적 여건이 넉넉하지 못한 재능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미술을 포기하거나 외면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프라는 투명한 공익 행사를 통해, 젊은이들이 일반인 관객과 만나고 순탄하게 미술시장에 진입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