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바람과 들풀

〈총보〉(1~166)=이 바둑을 이긴 직후 추첨에서 원성진이 다음 상대로 뽑은 기사는 중국 1인자 구리(古力)였다. "구리만 아니면 누구든 좋다"던 그는 2회전서 결국 구리의 벽을 못 넘고 탈락했다. 그것으로 대 구리 전 5연패. 하지만 불과 한 달도 못돼 둘은 제12회 한·중 천원전서 다시 만났고 이번엔 원성진이 2연승했다. 내용적으로도 완벽한 승리였다. 바둑 매스컴들은 '원성진의 재발견'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전날 실린 참고도처럼 흑이 두었다면 어찌됐을까. 박영훈은 "그래도 흑이 큰 소리칠 상황은 못 된다"고 했다. 백이 상대 실수로 거저 주운 내용은 결코 아니란 뜻. 들풀은 미세한 바람결 하나에 하늘거리며 쏠리는 방향을 결정한다. 고수의 바둑이란 누가 먼저 그 바람을 언덕에 풀어놓느냐의 경쟁이다. 미묘한 순간에 무심한 듯 결정타를 꽂아 넣을 수 있는 쪽이 진정한 강자라는 뜻이다.

리캉은 1시간가량을 남기고도 허망하게 무너짐으로써 끈기와 수읽기 싸움 모두 완벽하게 제압당한 꼴이 됐다. 원성진의 내년 LG배 활약을 기대하면서 140에 대한 참고도 하나를 추가한다. 백 1에 밀어 몽땅 잡겠다는 건 과욕. 8까지 백의 파탄이 기다린다. (166수 끝 백 불계승, 소비시간 백 2시간 59분, 흑 2시간 8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