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구상파(具象派)

〈제2보〉(18~32)='난해한 바둑'을 두는 대표적 프로로는 이세돌이 꼽힌다. 판만 시작됐다 하면 도처에 얽히고설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반면 박영훈의 운석(運石)은 상대적으로 간결하고 평이한 것으로 정평이 있다. 별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물 흐르듯 순조롭게 자기 페이스로 끌고 간다. 전자가 추상(抽象)주의라면 후자는 구상파(具象派)쯤 될까. 편하게 바둑 이기는 법이 궁금했던 팬들에게 이번 한 판은 훌륭한 교본이 될 것이다.

18은 어땠을까. 정석이니 문제를 삼을 수는 없겠으나, 21로 틀어막자 흑의 우변 세력이 더욱 빛나 보인다. 그래서 제시된 대안이 참고도. 이 진행이라면 우변 흑진을 적절히 견제하면서 짭짤한 실리와 함께 선수까지 뽑을 수 있었다. 23으로 24에 끊으면 복잡한 대형정석이 된다. 25 역시 '가'의 전개도 일책. 하지만 박영훈은 차분하게 모양을 정비하고 본다.

이제 26의 갈라침은 필연. 뒤집어 생각하면 25는 26의 침입을 유도한 인상이다. 28로는 '나'에 두고 흑 '다' 때 백 '라'가 보통인데 32까지 빨리 안정하는 쪽을 택했다. 이제는 좌상 흑도 틀을 갖출 차례. 어디가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