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중요한 수순(手順)

〈제3보〉(33~48)=박영훈의 낙천적 성격은 유명하다. 다른 기사들처럼 주요대국 전야에 긴장감으로 잠을 설치는 법이 없다. 오히려 아침 늦게까지 세상 모르고 꿈나라를 헤맨다. 대국 시작시간이 다 돼 관계자가 전화를 해도 안 받고, 급기야 호텔 방문을 따고 들어가 깨웠다는 식의 해외원정 에피소드는 하나 둘이 아니다. 초일류 승부사가 되기 위한 덕목은 여러 가지겠지만, 이처럼 태평스런 성격이야말로 타고난 복이다.

33은 선수로 자체를 보강하는 급소. 34를 게을리하면 '가'가 매섭다. 노타임으로 일관하던 박영훈의 손길이 백36 때 딱 멈췄다. 5분여 만에 놓인 수는 37. 좌하귀 정석 진행을 밟기 앞서 이렇게 먼저 미는 게 중요한 수순이다. 단순히 참고도 9까지 두는 것은 백 10 한 점이 너무 빛나기 때문. 초속기로 두어 치우는 것 같아도 포인트는 결코 안 놓친다.

47까지 일단락. 백은 다시 기로에 섰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나'로 좌변을 키우기엔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우변을 갈라 쳤다간 상변과 얽혀 바둑이 엷어질 가능성이 있다. 소문난 속기파인 저우쥔쉰, 별로 고민하지 않고 즉각 48로 날았다. 그리곤 격렬한 동작으로 부채질을 해 댄다. 아마도 그는 지구상 가장 많은 땀을 흘리는 프로기사 후보로 손색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