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목인과의 사랑' 33년… 어느새 8천점이 내곁에

"1975년 용산 주한미군기지에 초대받은 적이 있어요. 한 미군이 수집해놓은 옛 그릇과 반닫이들이 참 귀하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저도 우리 것을 모아볼까 싶어 인사동과 중앙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서민의 일상과 희로애락이 스며 있는 나무조각에 마음을 빼앗기게 됐죠."

33년 간 목인(木人·목재를 활용한 모든 조각상과 민예품) 8000점을 모아 국내 유일의 목조각 전문박물관을 세운 김의광(金義光·59) 목인박물관 관장은 목인들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종로구 견지동 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애써 모은 목인을 혼자서만 보기 아까워 박물관을 세웠다"고 했다. 24일까지 열리는 '중국의 탈' 전시의 배경이 된 벽은 온통 빨간색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중국 탈은 430점. 벽에는 사오정, 손오공, 삼장법사 탈이 걸렸다. 환하게 웃고 있는 노란 탈 '화상(和尙)'은 보고 있는 사람까지 미소짓게 만든다.

김 관장은 태평양그룹 창업자 고 서성환(徐成煥) 회장의 둘째 사위. 1975년 태평양에 입사해 '설록차'로 유명한 태평양 계열 장원산업 회장을 지내고 2004년 퇴직했다. 이승만 정부 때 교통·내무부장관을 지낸 고 김일환(金一煥)씨가 부친이다.

그가 모은 목인은 우리나라 것이 5000점, 중국·태국·네팔 등 외국 것이 3000점가량 된다. 개인 수집품으로는 보기 드문 규모다. 박물관에는 200~300점 정도를 전시하고, 나머지는 강남구 신사동의 수장고에 보관한다. 서민들이 만든 목인은 조상의 생활풍습과 토속신앙 복식문화 등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 나와 유명해진 종로구 부암동 카페 '산모퉁이'는 김 관장이 목인을 모아둘 수장고로 쓰려고 사뒀던 집이다. 김 관장이 고가구로 운치 있게 꾸며놓은 것을 방송사 직원이 우연히 발견해 드라마 촬영지로 쓰겠다고 제안했다.

김 관장은 "내가 이걸 왜 모으나 하는 회의가 든 적도 있다"고 말했다. 5년 전에는 석상을 모아놓은 경기도 광주 시골 집에 문화재청 조사팀과 경찰 광역수사대가 들이닥친 적도 있다.

그들은 "여기 돌 조각상이 많다는 첩보를 듣고 왔다. 장물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샅샅이 조사하겠다"면서 영장을 내보였다. 석 달간 김 관장은 석상 수백 개의 사진을 찍어 분류하고 일일이 출처를 대느라 곤욕을 치렀다.

한 번은 네팔 오지에서 산 목각이 인천공항 검색대에서 걸렸다. 세관에서 "나무에 흙이 묻어 있어 들여올 수 없으니, 전부 태우거나 네팔로 반송하라"고 했다. 반송했다가 들여오려면 운임만 수백만원을 내야 했다. 김 관장은 자식 같은 조각을 일단 돌려보냈다가 기어이 다시 배로 들여왔다.

수집 초기엔 "냄새 나고 먼지 많은 것을 왜 집에 들이느냐"던 아내(서혜숙·58)가 남편의 열정에 감복해 응원군으로 돌아서면서 김 관장은 큰 힘을 얻었다.

"박물관을 열기 전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내가 반대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군요.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하다 같이 사이판 여행을 갔죠. 보트를 타고 무드를 잡으면서 슬쩍 물어봤더니 의외로 선선히 좋다고 하더군요. 좋아하는 걸 모아서 곁에 둘 수 있고, 모으는 걸 좋아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니 저는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