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공포'

"남규리 알아?"라고 묻는다면 당신의 반응은 어떨까. 그룹 '씨야'의 남규리? 데뷔 때 '제2의 송혜교'라 불리던 가수? 가십에 관심 많다면 "가슴 노출 사건 있었던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배우 남규리'라는 호칭은 제2, 제3의 가십이나 생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든 게 사실이었다. '연기력 논란'은 자연히 따라오는 꼬리표일 것 같았다. 남규리는 이번 여름 유일한 한국 공포영화 '고死: 피의 중간고사'(6일 개봉)의 여주인공을 맡았다. 뮤직비디오에서 연기 해본 경험은 있지만 영화는 처음이다. 예상 외로, 그녀에게 배우라는 옷은 썩 잘 어울려 보였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동네 연기 학원에서 그녀를 무료로 가르쳐주겠다며 수차례 부모를 설득했다고 한다. 첫 영화에 도전한 그녀를 지난 4일 만나 인터뷰했다.

영화 '고사'는 친구의 목숨을 건 중간고사를 치르게 된 고교생들의 두뇌게임과 사투를 그렸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 창 감독(본명 윤홍승)의 영화 데뷔작으로 '여고괴담'을 잇는 학원 공포물이지만, 미국 호러 '쏘우'나 일본의 '배틀 로얄'을 떠올리게 한다.

남규리는 이 영화에서 드라마 '온 에어'에서 스타로 떠오른 이범수, 이번이 첫 영화 출연인 윤정희,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인기를 끈 김범과 호흡을 맞췄다. '혀 짧은 코맹맹이 소리'가 트레이드 마크가 된 윤정희와 비교하면 대사도 수월하게 잘 소화해 낸 편이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노는 게 마냥 즐거웠다"라며 웃었다.

남규리는 전교 5등에 씩씩하고 당찬 여고생 강이나를 맡았다. "이나는 저랑 굉장히 닮아있어요. 가수 때는 공주처럼 타이트한 옷에 하이힐로 분장해야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털털한 저를 보여드릴 수 있어서 마음이 편했어요."

그래도 바비 인형처럼 방긋방긋 웃고만 있던 TV 속 그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방송으로 보실 때 제가 좀 불편해 보이지 않으셨어요? 예능 프로그램은 정말 부담스러워요. 웃겨야 된다, 오버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요. 전 그런 체질이 아닌가 봐요."

그래서인지 '백치미가 도드라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백치미'란 단어에 뾰로통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색한다. "맞아요. 창 감독님도 저보고 백치미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거 두뇌랑 상관없는 거잖아요. 전 O형에 주관도 뚜렷하고 지향점도 확실하거든요. 할 말은 다 하는 편이고요. 백치미나 청순미도 제 모습이기 때문에 억지로 똑똑한 척, 말 잘하는 척 포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녀 말대로 "약간 어눌한" 말투였지만, 주눅든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규리는 데뷔 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손님으로 온 양현석(YG 엔터테인먼트 대표)과 이수만(SM 엔터테인먼트 대표)에게 "연예인이 되고 싶다"며 프로필이 적힌 쪽지를 건넬 만큼 당돌했다.

초등학교 때 집안 사정이 갑자기 안 좋아진 탓에 키워진 강한 생활력도 그 바탕에 깔려 있는 듯싶었다. 동생이 사 달라던 우윳값 350원이 없어 속상해했던 일이나, 300원짜리 일명 '쭈쭈바'를 쪼개 냉장고에 넣고 며칠에 걸쳐 먹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뭐가 잘 안 된다고 생각하면 잠을 안자고, 절 혹사시켜요. 힘든 걸 즐긴다면 이상해 보이나요? 그럼 '헝그리 정신'이랄까요?" 예쁜 인형 같던 남규리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졌다. 대신 당돌한 강이나, '배우 남규리'가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