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눈부신 수순(手順)

〈제10보〉(144~157)=저우쥔쉰의 얼굴 반쪽은 선천성 홍반(紅斑·붉은 반점)으로 뒤덮여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귀신'이라며 놀릴 때면 그는 400m 운동장을 70바퀴씩 돌고 들어와 바둑공부에 매달렸다. 14세 때 프로가 되면서 국위를 선양하기 시작하자 그의 성공기는 '홍면기왕(紅面棋王)'이란 제목으로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올랐다. 저우는 요즘 이렇게 말한다. "화(禍)가 있으면 복(福)도 있는 법이다. 이제 얼굴의 점은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그때 달리기로 배양한 체력이 세계제패의 원동력이 됐다."

146은 완착. 그 보다는 참고도 1, 3이 더 컸다. 147부터 흑의 기민한 끝내기 솜씨가 또다시 좌하귀를 수놓는다. 150까지 굴복시킨 뒤 151을 선수하고, 다시 153 이하 156까지 수순의 묘가 눈부시다. 나중에 '가'도 선수. 마치 소 한 마리를 해체해 이리저리 발라먹고 뼈다귀를 우려 국물까지 챙겨 마시는 형상이다.

할 일 다 마친 흑, 비로소 157로 보강한다. 박영훈을 왜 계산과 끝내기의 달인이라고들 부르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러나 박영훈의 '종반학(終盤學) 특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후로도 더 쉽고 깔끔한 수순들이 차곡차곡 반상을 수놓는다는 얘기. 백은 이제라도 '나'로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