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현학보다 당당한 '3류 정신'

청소년 시절에는 동시상영관, 지금은 시네마테크에 '출근'하고 있는 이 시네마키드의 재기 발랄한 비유에 따르면 이번 영화는 "동아시아 장르 영화의 총집합"이자 "장르의 인덱스(index)"다. 이만희 감독의 '쇠사슬을 끊어라'(1971) 등 옛 만주활극의 시각적 재현이면서, 60~70년대 한국형 스파이 영화, 90년대 홍콩 무술영화의 전통이 패러디 정신으로 버무려졌다는 것. 한강을 임진강, 용평 스키장을 알프스라고 우기는 식의 우격다짐 로케이션과, "우리 사람 ~했다 해"식의 가짜 엉터리 중국어 대사와 한국어 자막이 관객을 포복절도(抱腹絶倒)로 이끈다.

다른 감독이 쓰고 남은 자투리 필름으로 완성한 초(超)저예산 독립영화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의 기적 같은 성공 이후 류승완 감독은 '피도 눈물도 없이'(2002) '아라한 장풍 대작전'(2004) '주먹이 운다'(2005) '짝패'(2006) 등의 주류 대중영화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그 주류 안착의 이면에는 초창기의 에너지와 생기를 잃었다는 지적이 뒤따른 것도 사실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여러 번 '솔직함'과 '직업 윤리'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살아남기 위한 타협도 류승완이고 예술적 자의식의 반영도 류승완이겠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 젊었을 때의 자신을 바라봤을 때 부끄럽고 싶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는 "비평가의 환대를 바라고 예술영화인 척 하면서 부끄러워 하느니, 수식어나 현란한 어휘구사 없어도 쉽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고백을 했다. 그 노력 중의 하나가 '다찌마와리'라는 것.

감독 책상의 뒤쪽 벽면에 붙어 있는 이 뻔뻔한(?) 영화의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와 내가 부둥켜 안고 놀라움에 몸부림치며 일백 번도 넘게 볼 영화".

감독의 취향과 직업윤리가 과연 2008년의 한국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까. 이 '쾌남 스파이'의 스크린 복귀가 궁금한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