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LG배 세계기왕전] '맛'의 타이밍

〈제8보〉(100~112)=바둑용어들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맛'이 아닐까 한다. 한국기원이 발행한 바둑용어사전을 찾아보면 '수단의 가능성, 또는 수단의 여지가 남아있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맛'을 현실화하는 수읽기와 타이밍이야말로 바둑의 최고 기술에 속한다. 너무 일찍 건드려 '맛'을 소멸시키는 것도 문제고, 결행시기를 놓쳐 '맛'이 눈 녹듯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좌하귀 백은 그냥 죽어있지 않다. 참고1도 5까지 패(覇)를 내는 '맛'이 있다는 얘기. 참고2도 4로 이어 버텨도 12 다음 A로 빠져 역시 패가 난다. 백은 100으로 외곽에서 빙빙 돌 게 아니라 이 '맛'을 즉각 결행했어야 했다. 101이 기민한 수. 선수(先手)로 귀의 약점을 보강함으로써 두 참고도가 가졌던 '맛'들은 모두 사라졌다.

일거에 흑이 우세해진 국면이다. '맛'이란 녀석은 항상 이렇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잠깐 그림자만 너울거리다가, 새벽안개 걷히기 전 순식간에 시야 밖으로 사라져버리는 요물이다. 머뭇대는 사이 109까지 중앙에 흑의 대형그물이 쳐졌다. 중앙에 갇힌 백돌들이 112에 붙여 요동치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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