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후텁지근한 장마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두 편의 코미디 영화 '다찌마와리'와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개봉했다. 그리고 개성 넘치는 두 남자 임원희와 탁재훈이 관객을 찾았다. 코미디와 정극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두 배우의 코미디 연기는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인생이 그렇잖아요. 고비가 온 것 같다가 어느 순간 기회가 오고…."
14일 개봉된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의 탁재훈. 카메라 앞뒤의 모습이 상당히 달랐다. 코믹한 이미지와 달리 인터뷰에서는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다. 부침이 심한 연예계에서 오랜 시간 버텨온 내공의 소유자답게 일희일비와는 거리가 먼 듯했다.
탁재훈은 영화 러브콜은 항상 우선순위에 놓고 고민한다.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연기는 그에게 운명과도 같다. 영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스무살 때 영화가 좋아 스태프로 일했다. 제대 후 94년 영화 '혼자 뜨는 달'로 데뷔했다. 2002년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로 배우 이미지를 쌓기 시작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내 생애 최악의 남자' '어린왕자'에 이어 세번째 주연작이다.
"'어린왕자'를 하면서 정극 연기에 매력을 느꼈어요."
'가문의 위기' 이후 코미디 시나리오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익숙한 장르에서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택한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코믹 멜로다. 연기자로서의 꿈과 기존 이미지를 잘 배합한,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극중 탁재훈은 10년 간 한 여자(예지원)의 곁을 지킨 지고지순한 남자 철진으로 나온다. 술만 먹었다하면 대형사고를 치는 여자친구를 보살피느라 험한 꼴을 다 겪는다. 일명 '굴욕 흑기사'로 나와 예지원과 멜로 라인을 엮어간다. 알콩달콩 사랑을 엮어가면서, 키스신도 찍었다.
물론 관객들의 코믹 기대도 만족시켜준다. 특히 술에 취한 철진이 놀이터에 있는 뺑뺑이 기구를 타다 몸이 끼어 "도와주세요, 끼었어요! 안 빠져요"라고 말하는 신은 대박 폭소감이다. 또 철진이 엉덩이에 낀 쫄바지를 몰래 빼는 '쫄바지 굴욕 장면'도 탁재훈의 본능적인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장면.
이 신들은 콘티에 없던 것으로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애드리브의 달인다운 탁재훈의 순발력에 김정민 감독과 스태프들은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는 후문이다.
관객 호응도 뜨겁다. 최근 한 영화 사이트에서 진행된 '코믹 애드리브가 가장 기대되는 배우'를 묻는 설문 조사에서 탁재훈은 61%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착하고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관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작품으로 자신합니다."
연예인 축구단 '슈퍼레즈'의 대표 얼굴로도 맹활약 중인 탁재훈. 틈만 나면 공을 차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워낙 오라는 데가 많다보니 몸은 천근만근이지만, 연기 욕심은 하루 하루 커져만 간다. 꿈을 소중히 지키면서 한걸음씩 나아가는 그에게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또 어떤 기회와 의미로 자리매김될 지 궁금해진다.
'개성파 배우'란 수식어가 이처럼 잘 어울리는 연기자가 있을까. 그가 아니면 완성이 불가능했을 영화가 최근 개봉했다. 그 이름도 오색창연한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감독 류승완ㆍ이하 다찌마와리)'의 임원희다.
지난 2000년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리'에서 주연을 맡았던 임원희는 한번도 듣도 보도 못한 엉뚱한 캐릭터 다찌마와리를 탄생시켰다. 중저음의 남자다운 굵은 목소리, 구어체의 시적 또는 만화적 말투, 거기에 도끼빗으로 만들어낸 2:8 가르마. 오직 그만이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캐릭터를 가지고 극장판 영화로 임원희가 돌아왔다.
"영화도 새로운 시도지만 캐릭터 역시 완전 새로운 거였죠. 정해진 연기법도 없고, 모두 제가 만들어야 했습니다."
100％ 코미디 캐릭터의 영화지만 임원희의 연기는 한없이 진지하다. 그는 진지해야만 웃음이 터지는 역설의 연기를 펼친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임원희만의 능력이다.
"'다찌마와리'가 코미디 영화지만 제 연기가 꼭 코미디 연기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애드리브도 거의 없을 정도로 정해진 연기만 했죠."
류승완 감독은 '다찌마와리'를 농담과 진담의 경계에 있는 영화라고 규정했다. 임원희의 진지함이 코미디로 연결되는 역설의 연기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찌마와리와 임원희를 따로 생각할 수 없다.
그는 이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순수 토종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영화사를 다시 공부하듯 옛 영화들을 찾아봤다. EBS에서 하는 한국 흑백영화뿐만 아니라 홍콩 무협액션 영화, 프랑스 고전 영화를 거쳐 미국 서부 영화까지. 류승완 감독이 복고풍이란 이름으로 시치미를 뚝 떼고 옛 영화들을 오브제로 사용해 새로운 영화를 만든 것처럼 임원희 역시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OK목장의 결투'의 버트 랭카스터, 서부 영화의 지존 게리 쿠퍼, 1970년대의 쾌남 배우 신일용 까지 옛 영화 속 캐릭터를 섞어 새로운 캐릭터 다찌마와리를 만들어냈다.
이런 그의 노력 때문일까 '다찌마와리=임원희'란 공식이 벌써 굳은 것 같다. 마치 '슈퍼맨=크리스토퍼 리브', '마스크=짐 캐리', '오스틴 파워=마이크 마이어스'처럼 말이다.
"그런데 전 다른 배우가 다찌마와리를 하는 게 보고 싶어요. 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의 희망대로 되진 않을 듯싶다. 임원희 빠진 '다찌마와리'는 '앙꼬 없는 찐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