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도시… 잠 못 드는 그대

회한과 불안이 잠을 먹는다. 현대적이다. 깊은 밤이다. 번민의 무게에 눌려 컴컴한 천장을 응시하는 것은 차라리 위선적이다. 이 전시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방편은 더 어수룩한 곳에 방치돼 있을 것이다.

서울 종로구 화동 피케이엠(PKM)갤러리에서 22일 배영환(39)씨의 《불면증 전》이 개막했다. 전시장 1층에는 버려진 목재로 만든 새장에 톱밥을 가득 채운 설치작품 〈알바트로스〉가 걸렸다. 지하 1층에선 초등학교 교실 창가를 찍은 영상 설치작품 〈마음의 시간〉이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지상 2층에는 술병의 파편으로 만든 부엉이들이 철제 샹들리에를 횃대 삼아 앉아 있다. 부엉이는 저마다 뱃속에 형광등을 품었다. 거기서 묽고 창백한 빛이 스며 나온다. 〈아주 럭셔리하고 궁상맞은 불면증〉이 이 설치작품의 제목이다.

작가 배씨는 386세대다. 서울 연희동에서 자라나 80년대 후반 대학가에서 20대 초반을 보냈다. 서울 시내 주요 노숙자 지원시설 정보를 담은 수첩 3만부를 만들어 노숙자들에게 배포한 〈노숙자 수첩―거리에서 2001〉 프로젝트, 판자 위에 술병의 파편을 붙여서 흘러간 노래의 가사와 악보를 적은 〈유행가〉 연작, 낡은 재봉틀을 뜯어서 쌍기타를 만든 〈완전한 사랑〉이 대표작이다.

그는 뒷골목에 나뒹구는 판자, 술집 뒷문에 쌓인 술병, 버려진 가구와 재봉틀 등을 주워 작품을 만든다. 요컨대 가난한 사람들이 쓰다 버린 일상용품으로 그들의 생애와 번뇌와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집중해왔다.

그에 비해 이번 《불면증 전》은 보다 폭 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술병 파편으로 만든 부엉이 샹들리에 앞에서 관람객은 너나없이 각자의 분망한 일상을 돌아볼 것이다. 작가 배씨에게 서울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 누구나 뭔가를 걱정하고 있는 도시, 외롭고 고단한 사람들이 술집마다 모여서 떠드는 도시, 잠 못 드는 도시, 강박과 불면의 도시"이다.

부엉이 샹들리에에서 스며 나오는 형광등 빛은 그러나 공격적이지 않다. 오히려 명상적이다. 빠르고 거친 세상에 치여 잠결에도 걱정거리를 놓지 못하는 동시대 한국인들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깃들어 있다.

배씨는 건조한 말씨로 "서울은 불야성이고, 그게 다 술병조각으로 이뤄진 건데, 술병이 어느 날 아름다워 보였다"고 말했다. "머리를 바글바글하게 지지고 꽃무늬 몸뻬바지를 입은 시장통 아줌마들을 생각해보세요. 촌스러운데, 어느 순간 그들의 인생이야기가 읽히니까 그게 아름다워 보여요. 술병도 그렇지요. 한잔 한잔마다 대단한 에피소드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는 광주비엔날레(2000년·2002년·2004년)와 베니스비엔날레(2005년)에서 주목 받았다. 지난해에는 서울 신교동 서울농학교 담장에 이 학교 학생들이 그린 그림 300여 점을 도자기 타일로 구워서 붙이고, 〈수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평론가들은 그를 "민중미술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인 작가"라고 부른다. 스스로는 그런 명명(命名)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묻는 질문을, 표나게 언짢은 얼굴과 "나는 훈장이 싫다"는 간명한 말로 에둘러 갔다. 전시는 9월20일까지. (02)734-9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