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영화팀의 금주의 선택] 스코세이지표 '영화 콘서트'

"기타를 칠 줄 알았다면, 영화감독 따위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더 블루스' 제작 당시, 마틴 스코세이지는 오랫동안 감춰왔던 음악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이것은 조금 의외의 고백처럼 들렸다. 1978년 '더 밴드'의 콘서트 실황을 담은 영화 '라스트 왈츠'를 만든 이후, 스코세이지의 음악적 취향은 자신의 레코드 장식장 안에 고이 숨겨져 있었다. 동년배 뉴요커 우디 앨런이 재즈광의 취향을 영화 속에 노골적으로 담아냈던 것과는 달리, 그의 영화는 줄곧 담백한 드라마였다. 그러나 2003년 스코세이지는 7편의 영화를 하나로 묶는 연작 다큐멘터리를 통해 음악적 취향을 폭발하듯 풀어냈다. '더 블루스'는 블루스의 기원을 찾아가는 스코세이지의 '야심찬 항해'였다.

롤링 스톤스의 '비거 뱅 콘서트' 실황에 포커스를 맞춘 '샤인 어 라이트'는 언뜻 블루스를 사랑하는 스코세이지의 빗나간 음악적 행보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롤링 스톤스는 '반듯한 청년' 비틀스의 반대편에서 반항의 카리스마를 뿜어냈던 영민하고 섹시한 록 그룹. 그런데 스코세이지는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이끄는 이 '록 그룹'을 내세워 다시 한 번 '블루스'의 감흥을 되살린다.

어찌 보면 이건 당연한 일이다. 롤링 스톤스의 시작은 전적으로 블루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롤링 스톤스는 초창기 인터뷰에서 "무디 워터스나 존 리 후커 같은 흑인 블루스를 알리기 위해 그룹을 결성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스코세이지의 손을 거쳐간 네 편의 음악 영화를 둘로 묶으면, '샤인 어 라이트'는 의외로 '노 디렉션 홈'(밥 딜런에 관한 음악영화)이 아니라 '더 블루스'와 공집합이다.

'샤인 어 라이트'는 낯간지러운 헌사도 구구절절한 해설도 없이, 블루스의 목소리를 간직한 로커 믹 재거의 음악을 '그저' 들려준다. 치밀함보다 순발력에 의존해 관객의 열기를 끌어올리는 무대 위의 믹 재거. 젊은 날의 그가 말한다. "2년이나 밴드를 하게 되다니,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은 몰랐어요. 앞으로 1년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뽀송뽀송한 20대 청년은, 이 말을 뱉은 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무대 위에 서 있다. 젊은 날의 꿈과 노년의 열정이 빚어내는 충돌이 섬광처럼 빛난다. 그 이상은 없다.

단돈 8000원으로 VIP석에 앉아 롤링 스톤스의 공연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성찬이지만, 롤링 스톤스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겐 조금 감질나는 맛보기 뷔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코세이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어차피 그들의 생존력과 식지 않은 열정뿐. 감독은 "60세에도 무대에 올라 지금처럼 노래하고 싶다"는 그들이 아직 우리 곁에 건재하다는 사실이 그저 감격스럽지 않느냐고 묻는다. 스코세이지가 2시간 동안 공들여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 '예스'다.


■줄거리

'샤인 어 라이트'는 1회 공연 사상 최고 수익금(약 70억원)을 거둔 롤링 스톤스의 '비거 뱅 콘서트'를 카메라에 담은 영화다. 이전에 만들어진 스코세이지의 음악 다큐멘터리와 달리, 이번 영화는 한 그룹의 이면을 애써 기록하려 하지 않는다. 간간히 끼어드는 인터뷰 외에 어떤 군더더기도 없는 완벽한 '콘서트 영화'. 믹 재거는 이 영화에서 '비열한 거리' 삽입곡으로 유명한 '점핑 잭 플래시'를 비롯해 옛 연인의 히트곡 '애즈 티어스 고 바이' 등을 열창하고, 스코세이지는 그 모습을 16대의 카메라로 생동감 있게 포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