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한 듯 참신한 프랑스 코미디의 본좌 '발렛'

보잘 것 없는 남자와 슈퍼모델 미녀.

이 빤한 설정만으로 '남자 신데렐라'나 '프랑스판 < 노팅힐>'을 상상해선 곤란하다. <발렛>은 현실감각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머러스하면서 로맨틱하기도 한, 근래 보기 드문 웰메이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발렛 주차요원 피뇽은 어릴 때부터 짝사랑해온 에밀리에게 할부로 구입한 반지를 주며 청혼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실의에 빠진 그는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유명 인사 옆을 지나게 되는데, 이 때 찍힌 사진이 잡지에 실리면서 어느 변호사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제안인즉슨 세계 최고의 슈퍼모델 엘레나와 당분간 같이 살면서 연인 행세를 해달라는 것.

2:8 가르마가 무척이나 촌스러운 인상을 주는 남자 피뇽은 '루저' 캐릭터의 전형이다. 외모, 직업, 사회적 지위 뭐 하나 잘난 것 없는 그가 슈퍼모델과 연인 행세를 하자 주변 사람들은 노골적인 야유와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친구, 심지어 부모마저도 '의외의' 상황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둘 사이에는 애틋한 사랑 대신 속 깊은 우정이 싹튼다. 바로 이 점이 비슷한 설정만으로 < 노팅힐>을 떠올려선 안 되는 이유다. "당신과 사귀는 건 주차하는 일과 같아요. 멋지지만 내 차는 아니죠." 피뇽은 이 한마디로 에밀리와의 관계를 담백하게 정의 내린다.

피뇽 역을 맡은 게드 엘마레는 < 프라이스 리스>에 이어 소심남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내며 미녀 배우와의 찰떡 호흡을 과시했다. 어리버리한 듯한 표정으로 진솔한 사랑을 논하는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밖에 욕심 많은 재벌 르바쉐르 역을 맡은 다니엘 오떼유, 에밀리 역을 맡은 비에르지니 르도엔 등 비중 있는 조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슈퍼모델과의 동거라는 설정은 아찔한 판타지에 가깝지만 영화 전반의 유머러스한 분위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풍자에서 비롯하기에, < 발렛>이 주는 웃음은 특별하다. 군더더기 없이 흐르는 85분여의 러닝타임 동안 자연스럽게 번지는 웃음과 감동은, 불쑥 다가온 가을의 허전함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는 이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