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의 신(神), 영화의 신(神) 될까

"영화의 10% 정도는 자서전적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제게 이 작품이 더 각별한 의미가 있다면, 아마 그런 이유일 거예요. 한국에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빠른 시일 내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영화 '20세기 소년'(11일 개봉)의 원작자인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48·浦澤直樹)가 9일 오후 몇 번 미뤘던 답변을 e메일로 보내왔다. 다리 역할을 맡았던 영화사측은 작가가 거의 분신술(分身術)을 쓸 정도로 동시에 몇 가지 일을 치러내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아톰'의 데즈카 오사무(1928~1989)가 일본 만화의 신(神)으로 불렸다면, 우라사와 나오키는 21세기 일본만화의 새로운 신으로 불리는 작가. 데뷔작 '파인애플 아미'를 필두로 '해피' '마스터 키튼' '몬스터' '플루토' 등은 전 세계에서 1억 권이 팔려나갔고, 한국에도 그의 신도(信徒)가 100만 명을 넘는다. 쇼가쿠칸(小學館) 만화상, 고단샤(講談社) 만화상, 문화청 만화부문 우수상, 데즈카 오사무 만화대상 등 일본의 만화 관련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었고, 펴내는 작품마다 독창적인 세계와 새로운 철학을 창조하고 있다는 극찬을 받았다.

8년에 걸쳐 총 24권으로 마무리한 '20세기 소년'은 그가 완결시킨 작품 중 최신작. 자신의 작품 중 영화 시나리오 각본 작업까지 참여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런 예외적인 참여의 이유를 묻자 그는 "원작이 가진 기묘한 느낌, 낯선 분위기가 영화에서도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20세기 소년'은 그의 말대로 기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기둥 줄거리는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절대악(絶對惡)과 이를 막으려는 9명 친구들의 대결. 한 줄로 요약해 놓으면 허무맹랑하고 유치한 공상과학소설로 들리지만, 그 성글고 듬성듬성한 뼈대를 낯설면서도 친숙한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에피소드로 촘촘히 채워 넣는다. 권선징악(勸善懲惡)이나 해피엔딩으로 요약될 수 없는 현실의 삶이 1960년대에서 2018년까지를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것이다.

작가는 이 만화 연재를 시작했던 1999년, "20세기를 검증해보고 싶어서 그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지금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 원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역사는 면면히 계속되는 것이며 인과관계를 무시해서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중요한 일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다.

아쉽게도 이번 영화는 원작과의 차별성을 보여주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원작의 재현에 집착한 나머지 영화라는 장르만의 매력이 휘발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묻는 질문을 작가는 공란으로 비워뒀다. 그리고 두 장르 사이의 차이를 묻는 다음 질문에 "엔터테인먼트로서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는 큰 예산이 드는 점. 만화는 종이와 펜만 있으면 되니까(웃음)."라는 유머로 짧은 인터뷰를 마무리했다.